[김관후 작가의 시(詩)로 읽는 4·3] (44)제주 바다(도종환)

[김관후 작가의 시(詩)로 읽는 4·3] (44)제주 바다(도종환)
  • 입력 : 2020. 01.30(목) 00:00
  • 진선희 기자 sunny@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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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이곳에 오시어 꽃 피는 시절만 보고 가십니다

복숭앗빛 노을 속에 뜬 새 한 마리 기억만을 담아가십니다.

발끝 잔물을 적시며 나누던 아름다운 이야기들의

추억만으로 오늘로 또 이곳에 오십니다.



그러나 당신은 비명과 총소리 이 갯가에 가득하던 때의

저녁 비린내를 알지 못하십니다.

먹구름에 쫓겨 황급히 달아난 사람들 생각에

산 그늘진 마을 한 쪽을 모르십니다

당신은 언 발을 구르며 돌아오지 않는 사람들을 기다리던

우리들 피 묻은 추억을 생각지 못하십니다



불덩이로 솟았다 지금은 가슴 곳곳 구멍이 뚫린 채 식어 있는 돌멩이들처럼

아직 우리의 가슴은 메워지지 않는 채 이 바닷가에 쓰러져 있습니다

오늘도 우리는 무엇이 섞어서 이곳에 꽃 한 송이를 키우는가 생각합니다

무엇이 살아 저렇게 이파리들 몸서리치게 흔들고 있는지 생각합니다

오늘도 밤새가 울어머니 내 나잇적 똑같은 소리로 우는지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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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여행은 다크투어리즘(Dark Tourism)을 만나는 일이다. 다크투어리즘이란 전쟁이나 학살 등 잔혹한 사건이 일어났던 역사적 장소나 재난과 재해 현장을 돌아보며 교훈을 얻는 것이다. 대표적인 다크투어리즘 장소는 2차 세계대전 당시 약 400만 명이 학살당했던 아우슈비츠 수용소이다. 사람들은 왜 가슴 아픈 역사를 기억하려 할까? 그것은 과거의 비극을 어떻게 바라보고 대처하는 것에 따라 미래가 달라지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나라 서대문 형무소도 대표적인 다크투어리즘 장소 중 하나다.

제주도는 한라산과 360여 개 오름, 신비한 용암동굴, 곡선이 이름다운 돌담, 그리고 멋진 풍격이 있는 올레 길로 인해 대개 '천혜의 관광지'라는 데 시선이 멈춰 있다. 하지만 제주도는 단순히 아름답기만 한곳이 아니다. 우리 현대사의 아픈 흔적들이 있다. 아름다운 제주도, 그런 제주도를 깊이 들여다보면 그 속내는 너무 처절하다. 제주섬을 찾은 관광객들은 처음 공항에 발을 내딛는 순간, 그곳이 4·3 당시 참혹한 학살터였음을 모른다. 제주도의 이름다운 풍광이 깃든 곳곳은 4·3 당시 학살터였음을 아는 순간 당황할 수밖에 없다. 4·3평화공원, 섯알오름학살터, 북촌너븐숭이, 표선해수욕장, 정방폭포, 제주국제공항, 그리고 터진목학살터 등. 노벨문학살 수상작가 르 클레지오(Gustave Le Clezio)는 터진목에서 학살당한 사람들의 피의 냄새를 맡고 있었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저마다 사연이 있다. 여행을 하면서 만나는 자연과 문화를 하나의 이야기로 풀어내 여행자의 공감을 이끌어내는 스토리텔링이 필요하다. 특히, 스토리텔링 기법을 이용하면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문화재나 자연이 비록 적다하더라도 여행자의 상상력을 불러내 실재 존재하는 것보다 훨씬 큰 감동과 느낌을 준다.(김관후 작가·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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