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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관후 작가의 詩(시)로 읽는 4·3] (47)산 증인 큰넓궤-김순선
진선희 기자 sunny@ihalla.com
입력 : 2020. 02.20.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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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 난리가 끝날지 알 수 없지만

며칠만 꼭꼭 숨어 있으면

집으로 돌아갈 수 있겠지

오순도순 버티던 동광리 사람들



눈 녹인 물을 먹으며 배고픔을 달래보지만

한숨 소리 점점 깊어지고

쉬이 새벽은 오지 않고

인심은 점점 야박하여지고

끝내, 토벌대에 추적당한

큰넓궤 사람들

토벌대 무차별 총탄 앞에

허망하게 쓰러졌다



햇빛 한 번 제대로 보지 못하고

허리 한 번 제대로 펴보지 못하고

캄캄한 동굴 속에서

무참히 매장되었다

영원한 무덤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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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 직후 몇몇 지주와 관리들이 곡식을 매점매석하면서 쌀값이 폭등하자, 미군정은 공출제도를 부활시켰다. 1947년 8월 보리 공출을 독려하기 위해 관청 직원들이 동광리를 방문했다가 청년들로부터 집단 폭행을 당했다. 미군정의 '미곡수집령'에 반대한 이 사건으로 청년 3명이 실형을 선고받았다. 1948년 11월 15일 새벽, 토벌대는 주민들을 무등이왓에 집결시켰다. 마을 유지들을 추려내 밭에서 총살했다. 토벌대는 그해 12월 11일 청·장년 20여 명을 또 다시 학살했다. 큰넓궤 입구는 한 사람이 겨우 들어갈 정도로 좁지만 이곳을 지나면 넓은 공간이 펼쳐져 있다. 주민들은 큰넓궤로 숨어들었다. '궤'는 암반과 암반 사이의 공간, 천연동굴을 뜻한다.

주민 120여 명은 이곳에 은신하며 삶을 이어갔다. 그러나 토벌대의 집요한 추적 끝에 굴 안으로 진입하자, 주민들은 이불에서 솜을 뜯어내 고춧가루를 뿌린 후 불을 붙여 매운 연기가 동굴 밖으로 나가도록 부채질을 했다. 토벌대는 굴 입구에 돌을 쌓아 사람들이 나오지 못하게 막은 후 철수했다. 다음날 청년들은 굴 입구에 쌓여 있는 돌을 치우고 주민들을 대피시켰다. 한라산을 바라보며 무작정 산으로 들어갔다. 한라산 영실 인근 볼레오름으로 피난을 떠났다. 그러나 눈 위에 난 발자국을 보며 쫓아온 토벌대에게 붙잡히고 말았다. 주민들은 서귀포 정방폭포 인근에 있는 단추공장에 수용됐다. 주민들은 정방폭포로 끌려가 집단 총살을 당했다. 동광리 희생자는 큰넓궤에 숨어 있다가 정방폭포에서 총살당한 40여 명을 포함해 모두 153명에 이르고 있다. <김관후 작가·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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