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웅의 한라시론] 송악산을 위하여

[이영웅의 한라시론] 송악산을 위하여
  • 입력 : 2020. 03.19(목) 00:00
  • 강민성 수습 기자 kms6510@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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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악산은 천혜의 경관을 자랑하는 제주에서도 손꼽히는 절경을 지닌 곳이다. 지금은 올레 코스로도 이용되면서 주민들뿐만 아니라 관광객들에게도 많이 알려졌다. 하지만 송악산은 그 절경만큼 영예의 역사만을 이어오지는 못했다.

지난 1999년에는 송악산 오름 분화구 안에 호텔과 위락시설을 만들고, 정상까지 곤돌라를 세우는 개발사업이 추진됐다. 사업승인 후 착공식까지 이뤄졌지만 공사가 늦어지면서 이 사업은 승인이 취소된다. 거슬러 올라 1988년에는 정부가 송악산 일대에 군사기지와 비행장을 건설하는 계획이 추진됐다. 이에 대정읍과 안덕면에 주민대책위가 구성되고, 시민사회가 참여하며 반대운동은 크게 확산됐다. 결국 국회차원의 진상조사가 이뤄져 송악산 군사기지 건설은 백지화된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제주4·3과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주민들이 집단 학살됐던 현장인 섯알오름 역시 송악산이 품고 있는 곳이다. 송악산은 일제 강점기의 수많은 상처들도 갖고 있다. 송악산 산허리의 동쪽 해안을 돌며 파 놓은 20여개의 해안동굴이 남아있고, 고사포대와 포진지, 비행장과 비행기 격납고 등이 산재해 있다. 송악산은 그야말로 제주와 한국 근현대사의 살아있는 역사박물관이다.

이러한 환경적, 역사·문화적 가치를 지닌 송악산이 또 다시 수난을 겪고 있다. 천연기념물로 지정하고, 보호지역으로 지정해도 모자랄 판에 여기를 파헤쳐서 돈벌이를 하겠다는 것이다. 이미 개발사업 승인을 위한 모든 절차는 마무리됐고, 마지막으로 제주도의회의 환경영향평가서 협의에 대한 동의 절차만 남겨져 있다.

원희룡 지사는 지난 지방선거 당시 송악산은 생태적·지질학적 가치가 높은 만큼 개발사업 허가를 내줘서는 안된다고 했지만 현재 이 사안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있다.

송악산 개발은 인허가 과정에서도 순탄치만은 않았다. 경관 심의는 4차례, 환경영향평가 심의는 5차례에 걸쳐 진통 끝에 통과됐다. 최근에는 이들 심의 과정에서의 중대한 하자가 있었다는 문제가 제기됐다. 환경영향평가 협의 과정에서 제주특별법에서 정한 환경영향평가 전문기관의 검토의견을 계획에 반영해야 하지만 핵심의견은 누락하고, 주요 의견들은 제대로 반영하지 않은 것이다.

전문기관은 '송악산 유원지를 개발할 경우 이 지역의 자연경관에 미치는 영향이 매우 클 것으로 예상돼 사업을 재검토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총괄의견을 제출했었다. 그리고 '송악산과 셋알오름, 동알오름으로 이어지는 능선축의 온전한 보전, 법정보호종의 서식지 보전, 오수발생량의 재산정, 해양환경 조사의 필요성' 등의 주요 검토의견을 냈다.

하지만 제주도와 사업자는 "사업을 재검토하라"는 전문기관의 의견을 환경영향평가서에 누락시켰다. 다른 주요 의견에 대해서는 계획에 제대로 반영하지 않은 채 심의를 통과했다.

환경영향평가 협의는 무효라는 주장이 나올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에 앞서 정말로 송악산을 개발해도 되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을 해 봐야 한다. 그 모진 역사의 질곡 앞에서 항상 본연의 모습을 잃지 않고 꿋꿋하게 제 자리를 지켜온 제주사람들을 빼닮은 송악산이다.

이제라도 지나온 긴 삶을 되돌아 볼 수 있는 여유를 주어야 하지 않겠는가. <이영웅 제주환경운동연합 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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