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정묵의 하루를 시작하며] 이 봄에 항상성(恒常性)에 기대어

[좌정묵의 하루를 시작하며] 이 봄에 항상성(恒常性)에 기대어
  • 입력 : 2020. 04.01(수) 00:00
  • 강민성 기자 kms6510@ihalla.com
  • 글자크기
  • 글자크기
삼월이면 봄의 꽃들은 거의 꽃망울을 터뜨린다. 이제 제주는 노란 유채꽃들이 자연의 왕성한 삶을 우리들에게 알려주리라. 제주의 매화는 벌써 지고 콩알 크기의 열매를 맺고 있다. 며칠 비 그친 후 풍경이 맑고 시원했지만 저녁이 되면서 흐려지기도 했고 바람이 거세지기도 했다. 삼월 말인데도 온통 흐린 때문인지 문틈으로 스며드는 찬 기운으로 무릎이며 허리까지도 서늘하다. 제주의 봄은 참 변덕스럽다. 텃밭과 뒤뜰의 복숭아나무와 배나무도 곧 꽃이 만개할 것 같은데 이런 변덕에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봄의 꽃들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인류가 살아온 지난 역사의 삶들을 생각하게 된다. 까마득하게 여기던 구석기시대라고 해도 그리 오래지 않은 시간이다. 왜냐하면 진화의 과정이란 기준으로 보면 찰나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시대에만 해도 짐승의 털로 간단한 옷이야 만들어서 입었겠지만 요즘처럼 두터운 외투를 입지 않아도 충분히 삼월의 봄을 즐겼으리란 생각이 든다. 그때에도 사계절은 뚜렷했을 터이므로. 그러니까 우리 인류는 그토록 자연을 정복하고 극복해왔다고는 하지만 실상은 자연과 멀어지면서 극도로 나약해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항상성(恒常性, homeostasis)이란 말이 있다. 생명체가 여러 가지 환경 변화나 스트레스에 대응해 내부를 일정하게 유지하려는 조절 과정 또는 그 상태를 말한다. 추위나 더위에 대응하는 인간 본연의 능력이란 AI는 감히 흉내도 낼 수 없는 시스템이다. 외부의 자극으로부터 내부를 지켜내는 반응 체계는 인류를 존속하게 하는 힘이다. 문득 괜히 서늘하다는 생각에 항상성에 문제가 생겼다는 걱정이 될 정도다. 어디 나뿐일까. 오늘날 우리 인류는 자연에 반하는 문명으로 그토록 진화의 과정을 거치며 지켜온 이 항상성을 잃어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바람 많은 제주는 4월도 춥다. 그리고 사월 어느 날부터 민소매를 입어야만 하는 때가 된다. 그런데 지금 나는 핫옷, 그것도 오리털파카를 입고 있다. 문을 닫고 거실에 가만히 앉아있어도 무릎으로부터 시린 느낌이 들기도 하고 어떤 때는 어른들의 신경통처럼 시큰거리기도 해서 담요 등을 덮고 있어야 한다. 요즘 오십 정도의 나이는 시골에서 청년이라고 하지 않는가. 나이만을 탓할 게 아니라 항상성을 생각해야 한다. 그런데 이 항상성은 육체에만 해당되는 말은 아니다. 정신세계도 이 항상성으로 평형을 찾아가는 일련의 단계를 거치게 된다.

우리 인류는 진화의 과정을 추월하는 지나치게 문명화된 사회를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요즘 코로나 문제며 선거와 관련된 정치인들과 일부 시민들의 질주를 보면서 지금 인류의 문제며 우리나라의 상황이 다 그럴만하다는 생각이 든다. 16세기 스페인의 피사로 가문이 중미 잉카문명의 파괴와 원주민 학살에서 단지 천연두라는 바이러스만을 생각할 것은 아니다. 정신세계에 작용했던 항상성의 불균형을 기억해야 한다. 다행스러운 것은 많은 시민들이 '너'와 '나'를 떠나 '함께'를 나누고 있다. 어떤 상황이더라도 희망을 잃지 말아야 한다는 믿음을 확인하게 된다. <좌정묵 시인·문학평론가>
  • 글자크기
  • 글자크기
  • 홈
  • 메일
  • 스크랩
  • 프린트
  • 리스트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스토리
  • 밴드
기사에 대한 독자 의견 (0 개)
이         름 이   메   일
7679 왼쪽숫자 입력(스팸체크) 비밀번호 삭제시 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