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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바다와 문학] (47) 강문신의 시 '함박눈 태왁'
“역류로 이는 저 난바다, 우리 어멍”
진선희 기자 sunny@ihalla.com
입력 : 2020. 04.03.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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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센 파도치는 서귀포 앞바다. 강문신 시인은 새해 아침 눈날씨에 물질하는 어멍들을 보며 생의 숙연함을 노래했다.

농사와 복싱에서 배우며
온몸으로 살아냈던 날들
포구가 감싸는 거친 생애

시인은 한때 농협에 근무했다. 서른 살이 넘어 농협을 그만둔 뒤에는 농장과 목장을 경영했다. 그가 재배하던 월동감귤이 언론에 소개될 만큼 잘나가던 부농이었지만 차츰 형편이 기울어 갔다. 바닥으로 내려앉던 사업을 다시 살리려 애쓴 기간이 10년이었다. 그 시기 복싱체육관도 운영했다. 아침저녁 체육관 제자들과 가파른 계단을 오르내리며 몸과 마음을 달궜다는 그다.

1948년생으로 제주4·3을 거쳐 6·25전쟁을 겪었고 70~80년대 정치적 격변기를 건너왔을 시인이지만 그의 시편엔 역사나 정치에 얽힌 담론이 전면에 드러나진 않는다. 그 영향을 받지 않아서가 아닐 게다. 대신 시인은 온몸으로 살아냈던 날들에서 생의 격언을 낚는다. 그 중심엔 서귀포 바다가 있다. 마흔 하나에 서귀포문학회에 가입해 문학의 끈을 이으며 1990년과 1991년 신춘문예에 잇따라 당선되었던 서귀포의 강문신 시인이다.

시조선집 '나무를 키워본 사람은'(2016)에 시인이 골라 실은 '함박눈 태왁'은 지난 시절 제주 사람들의 생애가 응축된 작품이다. 신묘년 새 아침, 함박눈 날리는 서귀포항 새연교 아래 바다에 테왁 하나가 떠있다. 시인은 그 장면을 그려내며 '이런 날 이 날씨에 어쩌자고 물에 드셨나/ 아들놈 등록금을 못 채우신 가슴인가/ 풀어도 풀리지 않는 물에도 풀리지 않는// 새해맞이 며칠간은 푹 쉬려 했었는데/ 그 생각 그마저도 참으로 죄스러운/ 먼 세월 역류로 이는 저 난바다… 우리 어멍'이라고 노래한다.

치열한 하루하루는 해녀들의 것만은 아니다. 농부들도 소독복 꽉 껴입고 육묘장 들어서면 성호 긋고 링에 오르는 권투 선수('성호 긋고')가 되어야 한다. 처절히 링 바닥에 쓰러져 뒹구는 선수를 보며 환호성을 지르는 사람들. 시인은 세상살이가 그렇듯 매정하다는 걸 복싱을 통해 알았다. 가슴을 비우는 법, 아득한 황무지에 뿌리 내리는 법('나무를 키워본 사람은') 역시 시어를 다듬듯 귤나무를 키우면서 몸으로 체득했다.

그래도 비틀비틀 취하는 날들이 있다. 싸락눈 흩뿌리던 날, 자정 넘긴 목로주점에 그런 이들이 모인다. 술잔 기울이며 목청 높여 살아생전 마음을 태우고 상처를 줬던 망자를 불러내는 '어떤 사랑'의 사연이다. 시적 화자는 거침없이 욕설을 뱉어내지만 거기서 역설적으로 가신 이에 대한 그리움이 전해진다. 마침내 시조 종장에 이르면 '그 뱃길 어르던 안개 물때 맞춰 포구에 들다'는 풍경으로 전환된다. 먼 서귀포 바다가 우리네 삶 속으로 밀려드면 정제되지 않은 언어도 어느새 맑아진다. '우리 어멍'이 찬 기운 아랑곳 않고 뛰어들던 서귀포 바다가 또 한번 고귀한 존재임을 일깨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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