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유정의 제주문화사전] (15)제사

[김유정의 제주문화사전] (15)제사
이미 정한 일, 어찌 원래의 마음을 배반할 수 있겠나
  • 입력 : 2020. 06.22(월) 00:00
  • 편집부 기자 hl@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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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상없는 자손은 없다. 제주고씨 영곡공파 묘제.

제사는 조상 삶의 자리 밟아보는 일
욕망의 혼란 피하고 균형을 위한 ‘예’
고수레는 대상에 대한 고마움의 표시




#누군가를 기억하기 위한 제사

제사란 누군가를 기억하기 위한 것이다. 우리는 오늘날도 여전히 조상 제사를 모신다. '중용(中庸)'에는 제사의 참된 의미를 "내가 조상의 삶의 자리를 밟아본다는 것이다. 내가 조상이 행했던 예(禮)를 행하고, 그들이 즐겼던 악(樂)을 내가 즐기고, 그들이 공경했던 것을 내가 공경하며, 그들이 가깝게 지냈던 사람들을 내가 귀하게 여기는 것"이라고 했다. 죽은 자를 위해 제사를 지내는 것은, 한 마디로 자기 자신의 인간 됨을 배우는 인류애의 과정인 것이다. 삶은 무엇보다 귀하다. 70억 명 중의 내가 귀한 만큼 남도 귀한 것이고 우리가 더불어 귀한 존재이다. 우리가 존재하기까지 공동체를 이루며 살아왔던 수많은 날의 포용 정신은 우리 인류 문명의 희망의 동력이었고, 그것이 있었기에 지금의 우리가 있게 된 것이다. "죽은 이를 섬기기를 산 사람처럼 섬기라 하고, 멀리 사라져버린 사람을 섬기기를 지금 살아있는 사람처럼 섬기는 것이 효의 지극함이다." 효의 본질을 공동체로 눈을 돌리면 현실에 대한 관계들 간의 인간적인 배려에 있을 것이다. 자신에게 잘 대해 준 부모를 박대하는 사람들, 자신의 아이만 중하다는 어머니들, 나만 최고라는 사회성을 잃어버린 사람들, 참을성도 없이 여러 이유를 들며 실용주의에 빠진 사람들이 넘쳐나는 세상, 이런 세상에서 자라는 후대들은 다시 그렇게 키워낸 사람들을 패륜(悖倫)으로 반격할 것이다. 자유에는 분명 자율정신이 있다. 자율정신은 해당 사회와, 서로의 룰에 교감하기도 하지만 자유를 억압하는 여타의 이념이나 제도를 비판하는 정신이기도 하다.

선영에 장례 지내기 전 조상들에게 고하는 의식.

유교의 제사는 조선시대의 국가의 통치이념 아래 형식주의의 극치를 보이면서 왕조국가의 존치를 이루었었지만, 21세기 급변하는 시대상황에서 변화하고 있는 추세다. 물질세계가 변했으니 정신세계도 변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여전히 우리는 동양의 하늘 아래, 천·지·인 삼재(三才)의 사상 속에 영향을 받고 있다.

우리 생활문화에서 예는 상당히 중요하다. 예가 욕망을 충족시켜주기 위해 출현했지만, 욕망의 혼란을 피하고 사회발전의 균형을 위해 존재한다고 한다. '순자집해(荀子集解)'에 "인간은 태어나면서 욕망이 있으니, 욕망하다가 그것을 얻지 못하면 추구하지 않을 수 없고, 추구함에 있어 일정한 기준과 한계가 없다면, 다툼이 일어나지 않을 수 없다. 다툼이 일어나면 혼란에 빠지게 되고 혼란 때문에 곤경에 처하게 된다. 그래서 옛 성왕(聖王)은 사람들이 혼란에 빠지는 것을 싫어했기 때문에 사람과 사람 사이의 등급과 한계를 구분하였으며, 이것으로 사람들의 욕망을 충족시키고 사람들이 요구하는 것을 공급하였다. 그래서 욕망이 결코 물자로 인해 곤경에 빠지는 일이 없게 하고, 물자가 결코 욕망으로 인해 고갈되는 일이 없게 함으로써 이 두 가지가 서로 견제하면서 발전하도록 하였으니, 이것이 예가 생겨난 이유다. 그러므로 예란 사람들의 욕망을 충족시켜주는 것이다"라고 했다. 하지만 신분 질서를 만들어 낸 것은 성리학 최대의 실수였고 조선 패망의 원인이 되었다.



#마을 포제·해신제·용왕제 등 공통점

살아가면서 우리는 누군가의 고마움에 대해서는 늘 경외감을 가졌다. 사람들은 하늘의 해와 달, 별들을 쳐다보며 날씨, 계절, 시간을 알고는 여러 일들을 치르기 때문에 고마움의 표시로 하늘에 제사를 지내고, 땅이 오곡과 재물을 얻도록 해주었기 때문에 그 땅에 대해 제사를 지낸다. 우리가 토지신이라고 부르는 후토(后土)는 천하의 땅을 다스렸기에 제사를 지내어 그 은덕을 기리는 것이고, 주나라 시조인 후직(后稷)은 만민에게 백 가지 곡식을 파종하는 것을 가르치다가 산에서 지쳐 죽었기에 그의 노고를 생각하며 제사를 지내는 것이다. 천단(天壇), 사직단(社稷壇)의 유래나 각 마을의 포제, 마을제, 해신제, 용왕제, 영등제, 가정의 돗제, 조왕제, 칠성제가 만물과 그 역할에 대한 고마움, 그리고 안녕과 풍요에 대한 고마움의 표시이다. 세상 만물은 인간에게 많은 고마움을 주는 것들이다. 그것의 이름을 신이라고 부를 뿐이다. 신은 인간 사회를 형성케 해주는 매개이다. 실제로 만물이야말로 인간에게 좋은 일을 하는 대상인데 신이라는 말은 어떤 절대자가 있어서 인간을 보살펴주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그 만물에게 고마움을 느낀 대상일 뿐이다. 결국 신은 만물 자체였으며 인간이 그 만물에게 느끼는 존엄의 감정이었던 것이다.

잠수굿 모습.

'논형(論衡)'에 보면 고대 중국에서는 제왕은 백성을 위해서 일곱 종류의 제사를 지냈다. 수명(壽命)을 주관하는 신에게 지내는 사명(司命), 내실(內室)을 관장하는 신에게 지내는 중류, 도성(都城)을 지키는 신에게 지내는 국문(國門), 도로를 관장하는 신에게 지내는 국행(國行), 후사(後嗣) 없이 죽은 제왕 귀신에게 지내는 태려(泰려), 문지방에게 지내는 호(戶), 부엌신에게 제사 지내는 조(조)가 그것이다.

제후는 자신의 영지(領地)를 위해서 다섯 종류의 제사를 지낸다. 사명, 중류, 국문, 국행과 후사 없이 죽은 제후 귀신에게 지내는 공려(公려)다. 대부는 세 종류의 제사를 지내는데 후사 없이 죽은 대부 귀신에게 지내는 족려(族려)와 문(門), 행(行)이다. 적사(適士, 선비)는 두 종류의 제사를 지내는데 문(門)과 행(行)이다. 백성은 한 종류의 제사를 지내는데 방문(房門), 또는 부[조]이다.

이처럼 지내는 제사에는 두 가지 뜻이 있다. 하나는 여러 신들의 공로에 대한 보답이고, 다른 하나는 조상에 대한 공경인데 온 힘을 다 바친 공로에 보답하고, 은덕을 존숭해 조상을 본받는다. 고대의 성왕은 제사의 표준을 정했다. 좋은 법을 만든 사람, 나라를 위해 힘쓰다 죽은 사람, 전쟁에서 공을 세운 사람, 큰 자연재해를 막은 사람, 국가의 재앙을 막은 사람에 대해 제사를 지내도록 한 것이다.

조상 제사는 그들이 살아있을 때 봉양하는 도리가 있었으므로 죽은 뒤에도 그들의 도리를 저버릴 수 없어 마치 살아 계실 때와 마찬가지로 정성스럽게 제사를 지낸다. 그러니까 제사란 산 사람의 일에 비춰서 귀신을 받들고, 살아계실 때의 도리를 생각해서 죽은 자를 대하는 것이다.



#제사를 지내는 마음

공자는 기르던 개가 죽자 자공(子貢)에게 개를 묻게 하면서 말했다. "찢어진 장막을 버리지 않은 까닭은 말을 매장할 때 사용하기 위해서며, 찢어진 수레 덮개도 버리지 않은 까닭은 개를 묻는데 사용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나는 가난해서 찢어진 수레 덮개 조차 없다. 이 돗자리라도 가지고 가서 머리가 진흙 속에 빠지지 않도록 해달라."

계자(季子)가 서(徐)나라를 지나갈 때였다. 서나라 군주가 계자의 검을 갖고 싶어 했다. 그러나 계자는 중원의 각 나라로 가려던 중이어서 검을 줄 수가 없었다. 계자가 사신으로 갔다가 되돌아오는 길에 서나라에 들렀을 때, 서나라 군주는 이미 죽은 뒤였다. 계자는 허리에 차고 있던 검을 끌러 무덤가 나무에 걸어 놓았다. 마부가 물었다. "서나라 군주는 이미 죽었는데, 검은 또 누구에게 주는 것입니까? 계자가 대답했다. "이전에 이미 마음속으로 주기로 결정했던 이상, 죽었다고 해서 어찌 원래의 마음을 배반할 수 있겠는가?" 이리하여 검을 무덤가 나무 위에 걸어놓고 떠났다. 공로에 보답하는 제사는 공자가 기르던 개를 매장할 때 마음 씀씀이와 같다. 선조의 은덕을 기리는 제사는 계자가 검을 무덤가 나무에 걸어둘 때의 마음 씀씀이와 같다.

사람이 음식을 먹을 때는 겸양하면서 우선 땅의 은덕에 보답하려는 뜻을 나타낸다. 공자가 말했다. "비록 거친 밥과 나물국일지라도 고수레(코시)를 하는데, 반드시 제사 전 재계할 때와 마찬가지로 경의를 나타내야 한다. 결국 공자는 제사를 지내는 예가 사실상 겉치레가 아니라 자신이 처한 상황에서 대상의 고마움에 공경과 정성을 잃지 않는 마음 씀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우쳐준다.

<김유정 미술평론가(전문가)>

*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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