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양훈의 한라시론] 변시지 선생의 ‘제주해변’

[김양훈의 한라시론] 변시지 선생의 ‘제주해변’
  • 입력 : 2020. 07.16(목) 00:00
  • 강민성 기자 kms6510@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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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문화공원 이전을 기념해 문화공간 '누보'가 전시하는 '바람의 길, 변시지'에는 총 3점의 작품이 전시되고 있다. 2007년부터 10년간 미국 스미소니언 박물관에서 상설 전시돼 화제를 모았던 '난무'와 '이대로 가는 길' 두 작품과 말년의 대작 '제주해변'이다.

또한, 전시와 함께 '누보'가 펴낸 화집 '변시지'에는 화가가 내면화한 제주 바다의 원시적 풍경이 담겨 있다. 황금빛 아침 해와 바람에 휘날리는 구름, 폭풍의 바다와 태풍에 시달리는 소나무, 한가하게 풀을 뜯는 조랑말, 낡고 빈 초가집, 게와 벌거벗은 여인, 일엽편주 돛단배, 무너질 듯 성긴 울담, 지팡이를 짚은 구부정한 사내, 햇볕에 그을린 해녀와 소로길, 절벽에 부서지는 파도, 고개를 파묻은 아이, 젖은 하늘과 여(礖)에 갇힌 노인, 폭풍 속의 말테우리 소년, 까마귀들의 떼춤, 벌거벗은 사내, 지팡이를 짚고 외길을 가는 사내… 이런 풍경에는 한결 같이 외로움과 그리움, 고립감과 기다림, 절망과 희망이 덧칠돼 있다.

'변시지의 바다'는 해가 바뀌고 세월이 갈수록 하나둘 비어간다. 초가집이 사라지고, 테우리 소년과 잠녀(潛女)도, 까마귀 떼와 소나무도 모습을 감추는 것이다. 변시지 선생이 세상을 떠나기 한 해 전 2012년에 그린 유채화 '제주해변'은 빈 바다이다. 오른쪽 졸락코지 바위에서 참대 낚시대를 드리운 사내와 반대편 끝자락의 돛단배는 아득히 보일 듯 말 듯 점 하나처럼 조그맣다. 이 그림의 화폭은 높이가 60㎝인데 비해, 가로 길이는 보통 어른 키의 두 배인 333㎝다. 그의 작품 '아침 해'와 더불어 가장 큰 대작 중 하나인 '제주해변'은 제주 바다의 시원한 파노라마다. 언젠가는 점 하나로 제주를 표현하고 싶다고 했던 변시지 선생이었다.

그런데 변시지 선생이 이 작품을 그릴 즈음 제주해변의 실경(實景)은 오히려 반대였다. 온갖 건물이 우후죽순으로 들어차고 있었다. 오죽하면 제주는 돌과 바람과 여자에 더해 카페가 많아 사다도(四多島)라고 빈정댔을까! 노란색 터치로 아름답게 빛나는 그림 속 바다는 사실 오염과 쓰레기로 몸살을 앓고 있다.

나이 오십 귀향 후 그가 새롭게 발견한 제주의 색은 노랑 바탕과 검정 선(線)이었다. 그는 신선한 아열대 태양 빛의 농도가 극한에 이르면 하얗다 못해 황토빛으로 승화되는 것을 체험한 것이다. 척박한 수난의 역사로 점철된 섬사람들의 삶에 눈을 뜨면서 그는 고향 제주와의 재회를 운명적이라고 생각했다. 노년에 들어 선생의 내면에 승화된 제주해변은 이어도의 풍경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두 눈을 뜨면 사라지는 이상향이었다.

녹색연합이 제주도의 생태환경 문제를 소재로 제작해 서울환경영화제에 출품한 단편 다큐멘터리 영화 '그 섬'을 관람했다. 한라산 숲과 바다 생태계에는 이미 큰 변화가 진행 중이다. 한라산 구상나무 숲은 집단으로 고사하고 있고, 해수면은 세계 평균보다 빠르게 상승하고 있다. 바다는 수온이 높아져 갯녹음 사막화가 진행된 지 오래다. 정작 도지사와 관료들은 제주의 보배인 생태계를 걱정하기보다는 여전히 개발에 역점을 두고 있다. 그들은 제주도청 앞 천막촌과 비자림로 숲에서 외치는 소리를 왜 들으려 하지 않는가! 나는, 우리는 지금 어느 바다에 있는가? <김양훈 프리랜서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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