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觀] 그게 악역이라도, 어떤 엔딩이라도

[영화觀] 그게 악역이라도, 어떤 엔딩이라도
  • 입력 : 2020. 08.28(금) 00:00
  • 강민성 기자 kms6510@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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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전도연(왼쪽 두번째).

대한민국 배우로는 처음으로 세계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는 칸 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배우 전도연. 그런 그녀에게 '연기가 훌륭하다'라는 감탄과 상찬은 어쩌면 좀 게으른 평가일지도 모르겠다. 그녀가 이창동 감독의 '밀양'으로 칸 영화제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것이 2007년, 그 후로도 그녀는 11편의 영화를 더 찍었다. 매년 쉬지 않고 성실하게 큰 상의 무게를 지워 나가고 있는 것이다.

작품 속에서 자유롭게 유영하는 배우 전도연은 마치 노련한 서퍼처럼 캐릭터의 파도를 타는 배우이기도 하다. 그녀의 필모그래피와 캐릭터를 찬찬히 들여다보면 그 난이도의 큰 진폭이 보인다. 잘 하는 연기, 잘 맞는 유형의 캐릭터가 배우마다 따로 있겠지만 전도연이라는 배우는 스스로에게 흥미롭게 느껴지는 작품과 캐릭터를 선택하는 대담성으로 필모그래피를 채워왔다.

'밀양'이라는 큰 산을 넘은 뒤 전도연은 '멋진 하루'라는 산책길을 택했다. 오래 삼킨 고통을 절규하듯 꺼내는 '밀양'의 신애와 상대에게 속마음을 보여주기 싫어서 센 척하는 '멋진 하루'의 희수. 두 작품에서 전도연이라는 배우가 보여준 점프는 곡예에 가까울 정도로 간극이 커서 매우 흥미로웠다. 특히 두 작품 모두 배우가 캐릭터에게 애정을 듬뿍 주고 있다는 점이 느껴져서 도대체 이 배우의 에너지와 연기에 대한 애정의 근원이 궁금할 때도 있었다.

최근작들에서도 전도연의 선택은 마찬가지다. 최근 개봉한 작품들에서 전도연은 난이도가 높은 캐릭터들을 연이어 연기했다. 세월호 사고를 모티브로 한 영화 '생일'에서는 불의의 사고로 아들을 잃은 엄마를, 특별 출연한 '백두산'에서는 약과 병에 취한 북한 여성을, 그리고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에서는 피도 눈물도 없는 대담한 술집 사장을 관객들에게 선보인 것이다.

물론 완급 조절에 능한 테크니션인 그녀의 연기는 흠잡을 데가 없었다. 냉정과 열정 사이를 자유자재로 오가는 풍부한 표정과 특유의 어조로 만들어내는 대사의 감칠맛은 관객을 영화 안으로 끌어당기는 매혹적인 요소로 기능했다. 거기에 더해 데뷔 때부터 극찬을 받아온 배우로서의 감정적 반응, 직관적인 표현은 세월이 지나 더욱 농밀해져 캐릭터를 입체적으로 만들어냈다.

특별 출연한 '백두산'에서 채 몇 분이 되지 않는 출연 시간 동안 압도적인 존재감으로 캐릭터의 서사를 오직 연기만으로 완성시키는 그녀를 보며 입이 딱 벌어졌다. 분량에 상관없이 주인공이 된다는 것이 저런 의미가 아닐까 싶었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에서 술집 사장 연희를 연기한 전도연은 영화 중반부에 처음으로 등장한다. 멀티 캐스팅 속에서도 눈이 번쩍 뜨이는 그녀의 연희는 차갑고 대담한, 뜨겁고 무서운 여자다. 배우 전도연의 전작인 '카운트다운'이나 '무뢰한'의 캐릭터들을 떠오르게 하는 부분도 있지만 이전의 그녀들이 복잡한 전사를 지닌, 순정에 눈물 짓는 물기가 촉촉한 캐릭터들이었다면 연희는 서릿발 같다. 칼도 아니고 톱을 든 전도연을 상상해 본 적이 있는가. 나는 한 번도 그런 생각은 해 본적이 없었는데 이 영화를 보고 배우 전도연이 아직 가지 못한 영역에 발을 들일 준비가 충분히 됐다는 확신이 들었다.

전도연의 케이퍼 무비, 전도연의 액션영화, 전도연의 블록버스터까지 모두 보고 싶어졌다. 그게 악역이라도, 어떤 엔딩이라도 받아들일 준비 또한 충분히 돼있다.

<진명현·독립영화 스튜디오 무브먼트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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