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사중도 아닌데 폴리스라인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수사중도 아닌데 폴리스라인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모호한 법률-규정이 경찰통제선 무분별한 사용 부추겨
집회 제외하곤 명확한 규정 없어..쇼핑몰서 버젓이 판매
  • 입력 : 2020. 09.14(월) 17:18
  • 이상민기자 hasm@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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잇따른 태풍 때 사고 방지 목적으로 친 폴리스라인. 그러나 사고 방지 목적이라는 도내 경찰기관들의 설명과 달리 폴리스라인에는 '수사중'이라고 적혀 있다. 사진 독자 제공

지난 10일 오전 7시쯤 제주시 용담3동 해안도로를 걷던 A씨는 흠칫 놀라 발걸음을 멈췄다. 해안가 쪽에 '수사중'이라고 적힌 노란색 폴리스라인(경찰통제선)이 처져 있었기 때문이다. 취재 결과 이 폴리스라인은 수사 목적으로 설치된 것이 아니었다. 육경이든 해경이든 도내 경찰기관은 수사 목적으로 친 것이 아니라면서도 명확한 설치 주체를 찾지 못했다. 다만 잇따른 태풍 내습 때 일반인들의 해안가 출입을 막으려고 설치된 것으로 추정된다고 했다. 이런 사실을 전해들은 A씨는 황당했다. 그는 "그럼 수사중도 아닌데 수사중이라고 적힌 폴리스라인을 쳤다는 것이냐"면서 "이런 것 때문에 오히려 주민 불안이 커진다"고 지적했다.

▶경찰도 헷갈려=통상 폴리스라인은 살인, 절도 등 형사사건 발생 현장에서 일반인 출입을 통제해 증거 훼손을 막을 목적으로 쓰인다고 알려져 있다. 폴리스라인은 여기에 더해 집회시위 현장에서도 사용된다. 이때 설치되는 폴리스라인의 법적 명칭은 '질서유지선'이다. 집시법은 집회·시위 보호와 질서유지를 위해 필요하다고 인정될 때 최소한의 범위에서 질서유지선을 설정할 수 있도록 했다.

문제는 집회·시위 때를 제외하곤 폴리스라인에 대한 사용 규정이 명확하지 않다는 데 있다. 경찰 장비를 규정한 법은 '경찰관 직무집행법'과 '경찰제복 및 경찰장비의 규제에 관한 법률'(경찰장비법) 등 2가지다.

이중 직무집행법은 경찰 장비를 무기, 경찰장구(警察裝具), 최루제(催淚劑) 등 직무 수행에 필요한 장치와 기구로 규정했다. 또 ▷범인 체포 또는 도주 방지 ▷자신 또는 다른 사람의 생명 보호 ▷공무집행에 대한 항거 제지 목적으로 경찰 장비를 사용할 수 있도록 했다.

지난 10일 발견된 정체불명의 '폴리스라인'을 '경찰 장구'로 보고, 또 인명 사고 방지를 위해 친 것이라고 해석한다면 이는 법이 정한 생명 보호 목적에 가까워 규정에 어긋난 것이라고 볼 수 없다.

그러나 직무집행법 상에도 경찰 장구가 수갑, 포승, 경찰봉, 방패 등으로만 명시돼 있다보니 경찰 조차도 폴리스라인이 경찰 장구에 해당하는지 명확한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폴리스라인에 대한 명확한 가이드라인이 없다보니 각 부서가 자체적으로 판단해 사용하고 있다"고 전했다. 또 다른 경찰 관계자는 "사용 규정과 상관 없이 폴리스라인을 칠 때에는 수사 또는 사고 방지 등 설치 목적을 명확히 알려야 막연한 주민 불안을 덜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누구나 구입 가능=직무집행법이 경찰장비 사용 과정에서 지켜야 할 규정을 다룬 것이라면, 경찰장비법은 무분별한 사용을 막기 위한 규제들을 정한 것이다.

경찰 제복이 대표적이다. 경찰 제복이 무분별하게 유통되면 경찰 사칭 범죄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경찰 제복은 오로지 경찰만 입을 수 있다.

그러나 경찰이 사건 현장에서 늘상 사용하는 폴리스라인은 이런 규제에서도 벗어나 있다. 경찰장비법은 일반인 사용·유통이 금지된 경찰장비로 ▷수갑 ▷방패 ▷경찰권총 허리띠 ▷경찰차량 등으로만 규정했다.

인터넷 쇼핑몰에서 판매되는 폴리스라인. 인터넷 쇼핑몰 홈페이지 갈무리.

이런 이유로 폴리스라인은 누구나 쉽게 구입할 수 있다. 인터넷 포털사이트 검색창에 '폴리스라인'을 치면 '수사중'이라고 적힌 상품 십수개가 검색된다. 가격은 1개당 1만원 안팎이다. 경찰은 법적 근거가 없다보니 일반인 유통을 막을 방법이 없다고 했다.

경찰 관계자는 "수갑, 방패 등은 위험 물품이기 때문에 안전상의 문제와 경찰 사칭 범죄가 발생할 수 있어 일반인 유통을 막은 것"이라며 "반면 폴리스라인은 위험 물품으로 볼 수 없어 유통 금지 대상으로 명시되지 않은 것 같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그럼 일반인이 내 집 앞 주차를 막을 목적으로 폴리스라인을 치는 것도 허용되느냐'는 질문에 "법에 저촉되는지 여부는 확인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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