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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양훈의 한라시론] 악의 평범성과 무사유(無思惟)
강민성 기자 kms6510@ihalla.com
입력 : 2020. 11.19.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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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때에 따라 열리고 닫혔다 해서 터진목, 광치기 해변에서 일출봉으로 들어가는 물목이다. 지난 11월 5일 이곳에서 4·3희생자를 기리는 위령제가 열렸다. 이 일대는 4.3사건 당시 성산면과 인근 사람들이 동국민학교 담 너머 주정공장 창고에서 모진 고문 끝에 끌려와 처형된 현장이다. 참극을 벌인 특별중대 병사는 모두 서북청년단원이었다. 군번 없이 경비대나 민간복장을 한 이 부대는 성산포 일대에 주둔하며 무고한 양민들을 고문하고 학살했다. 당시의 참상을 겪었던 주민들의 증언을 들어보면 그들은 악마와 다름없었다.

서북청년단의 연원을 파헤친 윤영란 박사의 ‘한국전쟁과 기독교’는 서청의 정체에 대한 시야를 넓혀주는 역저다. 이 책에서 주요 등장인물은 한경직 목사다. 해방공간, 서북에서 쫓기듯 월남한 개신교인들은 영락교회를 설립한 한경직을 중심으로 속속 결집했다. 영락교회는 월남자들의 신앙 공동체이자 반공의 전투기지 역할을 하며 교회 소속 학생회·청년회가 서청 탄생의 중심이 됐다. 한경직 목사는 80년대 초 인터뷰에서 이렇게 회고했다. "그때 서북청년회라고 우리 영락교회 청년들이 중심이 되어 조직을 했시오. 그 청년들이 제주도 반란사건을 평정하기도 하고 그랬시오."

이웃사랑이 신앙인 기독교도들이 무고한 양민들을 어떻게 그렇게 잔악하게 고문하고 학살할 수 있었을까? 서청의 만행에 대한 증언을 들을 때마다 가졌던 의문이다.

한나 아렌트가 유대인 학살 주범인 아돌프 아이히만의 재판과정을 취재하고 쓴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에서 밝힌 ‘악의 평범성’이 그 해답이 될 수 있다. 한나 아렌트는 아이히만이 반인륜적 범죄를 저지른 것은 타고난 악마적 성격 때문이 아니라 아무 생각 없이 자신의 직무를 수행하는 ‘사고력의 결여’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악의 화신으로 여겨졌던 아이히만의 ‘악마성’을 부정하고 악의 근원은 평범한 곳에 있다는 주장이었다. 아이히만은 평범한 가장이었으며 자신의 직무에 충실한 모범적 시민이었다고 하는 사실은 많은 사람을 곤혹스럽게 만들었다.

한나 아렌트의 ‘악의 평범성’에 따르면, 서북청년단은 미군정과 이승만 정권의 명령을 성실히 수행한 하수인에 불과하다. 평소엔 착하고, 인간관계에서도 도덕적인 그들은 자신들이 저지른 만행에서 어떤 잘못도 느끼지 못하고, 자신이 받은 학살명령을 성실하게 수행했을 뿐이다. 그렇다면 그들은 무죄인가? 한나 아렌트의 대답은, 그들의 죄는 악의 근원인 무사유였다.

터진목에는 노벨문학 수상자 르 클레지오의 글이 적힌 기념비가 있다. "섬에는 우수가 있다. 이게 어디서 나오는지 알 수가 없다. 그것이 마음 갑갑하게 만드는 이유다.” 르 클레지오에게 답하고 싶다. 가해자에 대한 심판은 없고 피해자의 슬픔만 가득한 곳이라 그러하다고. 정치적 뒷배가 없는 섬나라는 50년의 침묵을 강요당했다.

제주4·3의 가해자들은 아이히만처럼 법정에 서기는커녕 정부의 지위 높은 고관이 됐거나, 정치지도자로 오랜 기간 세력을 가졌다. 그뿐이 아니다. 김익렬 연대장이 유고에서 밝힌 것처럼 제주의 유지들과 지식인들은 가해자들의 정체와 진상을 알면서도 자신들의 안위와 후환이 두려워 덮어버린 것이다. 평화의 섬은 거짓이다. 이 섬의 우수를 걷어낼 길은 없는 것인가? <김양훈 프리랜서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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