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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제주 고성기 시인 신작 시집
아이의 시선으로 가볍게 내려놓다
진선희 기자 sunny@ihalla.com
입력 : 2020. 11.20.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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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날의 ‘섬을 떠나야…’
고희 넘긴 ‘섬에 있어도…’

쉽게 듣고 어렵게 쓴 시들


첫 시집이 '섬을 떠나야 섬이 보입니다'(1992)였고 10년 뒤엔 '가슴에 닿으면 현악기로 떠는 바다'(2002)를 냈다. 제주4·3 와중인 1949년 어촌 마을인 한림에서 태어난 고성기 시인에게 바다는 일찍이 떠남과 돌아옴의 공간이었는지 모른다. 이번에도 바다가 있다. 신작 시집 '섬에 있어도 섬이 보입니다'로 제목에서 짐작하듯 '섬을 떠나야 섬이 보입니다'에 조응한 창작집이다.

'섬에 있어도/눈 감으면/ 이리 환히 보이는 걸/ 내 젊은 날 왜 그렇게/ 떠나야만 보였을까/ 이맘쯤/ 사려니숲엔/ 복수초 노랗겠다'는 표제시의 한 구절에 폭풍 같았던 젊은 시절을 건너 어느덧 고희를 넘긴 오늘날 시인의 모습이 비친다. "집착과 욕심에서 멀어질수록" 섬이 더 선명하게 다가온다는 시인은 이제 섬을 떠나지 않는다.

70여 년 세월 속에서 '우린 모두 섬이었구나'를 깨달은 시인은 이번 시집에서 그 나이듦이 안온한 서정으로 드러나는 시편들을 펼쳐놓고 있다. "꾸미는 말과 기교가 사라지고 더러는 실체를 보게 됐다"는 시인의 말처럼 '어린 아이의 눈'으로 보며 '어른의 진실'을 노래하고 있다.

그 진실은 거창한 데 있지 않다. 우연히 마주한 때수건 광고, 산책길에서 만난 제자를 통해 시가 탄생했다. 쉽게 듣고 어렵게 썼다는 시들은 또 있다. 백약이오름 억새를 배경으로 결혼을 앞둔 남녀가 웨딩 촬영을 하는 장면이 그려진 '살아보라'엔 지나던 할머니가 '살아보라 벨치 안 헌다'고 읊는 구절이 따른다. 때론 '우린 늙어가는 것이 아니라/ 조금씩 익어가는 겁니다'('바램')란 어느 가수의 노래 가사 한 줄이 시인의 감성을 건드린다. '곡선은 돌아올 줄 안다', '가끔은 가벼운 게 더 좋다', '다 내려놓은 꽃' 등 시 구절에서 가려뽑은 소제목들은 그것만으로 시인의 마음이 읽힌다.

시집 말미엔 시인이 적은 '시와 함께 걸어온 길'이 실렸다. 그의 이력에 곁들여 시를 이해할 수 있는 이 글에서 시인의 삶이 곧 바다를 지향해온 여정임을 알 수 있다. 시인은 "섬사람들에게 바다는 정복의 대상이 아니라 영원히 함께할 친화의 대상이고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그러기에 그 넓고 퍼런 바다 앞에서 늘 겸허하게 자신을 낮추었고 기다렸고 기도했다"고 했다. 파우스트. 1만원. 진선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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