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해남의 월요논단] 몰빵 제주농업에서 벗어나기

[현해남의 월요논단] 몰빵 제주농업에서 벗어나기
  • 입력 : 2021. 01.25(월) 00:00
  • 이정오 기자 qwer6281@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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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빵’이라는 말이 표준어는 아니다. 본래 윷놀이할 때 말이 가는 길을 그린 ‘말판’이라는 뜻이다. ‘몰’은 ‘말’의 아래아 발음, ‘판’이 ‘빵’으로 변하면서 생긴 말이라고 한다. 제주에서는 지금도 윷놀이할 때 ‘몰빵 잘 쓰라’라는 말을 한다.

이 몰빵이 한 곳에만 투기한다는 의미로도 쓰인다. 한탕주의, 올인을 말한다. 주식투자에서도 자기 재산을 한 주식에 투자하는 것을 몰빵이라고 한다. 마치 홀짝 놀음하듯이 성공하면 떼돈을 벌지만 실패하면 모든 것을 잃는다.

몰빵의 반대말은 다양성이다. 수익성과 안정성을 고려하면서 투자하는 방식이다. 안정성과 수익성을 저울질하려면 계산을 잘해야 한다. 남과의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기술도 배운다. 몰빵은 계산이나 기술이 필요 없다. 남이 투자한다면 우르르 몰려가서 투자하면 된다.

2000년 전에 나온 유대인의 오랜 지혜를 모은 탈무드에는 "모든 이로 하여금 자신의 돈을 세 부분으로 나누게 하되, 3분의 1은 토지에, 3분의 1은 사업에 투자하고, 3분의 1은 예비로 남겨두라"라는 말이 있다.

500년 전에 세익스피어의 희곡 ‘베니스의 상인’에도 이런 말이 나온다. "내 물건을 한 배에만 실은 것이 아니고, 거래처도 한 군데가 아니거든, 또 전 재산이 금년 한 해의 운에 달려 있지도 않다네"라고 얘기한다. 실제로 세익스피어는 번 돈을 극장, 집, 토지 등에 분산 투자했다고 한다.

제주농업은 몰빵 농업이다. 올해도 어김없이 늘 해오던 월동채소에 몰빵했다. 월동무 30만t, 양배추 10만t, 당근 5만t이 넘으면서 가격은 하락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몇 개의 월동채소에 돌아가면서 몰빵했기 때문에 홍수 출하를 막을 방법도 없다. 매년 되풀이되는 현상이다.

감귤도 마찬가지다. 극조생 온주가 가격을 잘 받는다니까 우르르 극조생 온주로 갈아탔다. 제주감귤 가격을 하락시키는 원인으로 지목받는다.

한라봉 가격이 좋다니까 너도나도 한라봉에 몰빵했다. 면적이 1500㏊까지 늘어나면서 가격 하락이 시작됐다. 5년전부터는 천혜향, 레드향에 몰빵하기 시작했다. 품질을 높이려는 노력과 기술개발은 뒷전이다. 품질을 높이면 가격을 잘 받는다는 바른길, 품질은 재배기술에서 나온다는 평범한 진리보다 품종을 바꾸면 돈 번다는 단순한 몰빵 논리다. 몇 년 후에는 천혜향, 레드향도 한라봉 길을 밟을까 두렵다.

하나로마트, 이마트 농산물 코너에 제주 월동채소는 구석에 있고 시금치, 쪽파, 대파, 고구마, 가지, 상추, 봄동배추, 쑥갓, 마, 감자, 미나리, 쑥, 새싹삼, 꽈리고추, 청향고추, 오이고추, 생강, 단호박 등 다양하게 진열돼 있다.

작년에 새농민상을 받은 이석근 농가 말은 새겨들을 만하다. 한 작물에 몰빵하지 않고 레드향, 쑥갓, 상추, 옥수수, 무, 보리, 콩, 메밀, 시설채소 등 다양한 작물을 재배했더니 큰돈은 못 벌어도 실패는 절대 없다는 말이다.

제주농업이 마트의 농산물 코너를 모두 채우는 다양성을 갖지 못하면 도의 어떤 정책도 지원도 아무 소용이 없다. 몰빵해서 성공하는 사람도 없다. <현해남 제주대학교 생명자원과학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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