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개 후 영화에 대한 평가는 분분하다. 한국형 신파가 우주 영화라는 개척지에서도 굳이 필요했냐 비판하는 이들도 있고 이 정도면 첫 술에 충분히 배부른 결과라며 기술적 완성도에 특히 흡족해하는 이들도 많다. 큰 기대를 안고 영화를 본 나는 비판과 만족 사이 어디쯤에서 재미와 갸웃거림을 동시에 안고 '승리호'에서 내린 승객이었다. 들어설 땐 휘둥그레 눈을 떴지만 타는 내내 그다지 긴장감이 있던 비행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구경거리가 없었냐고 하면 그것도 아니었다. 장현숙 선장과 업동이 언니 같은 사람 구경이 제일 이었고 어디서 본 것 같긴 하지만 우주를 유람하며 흥이 났던 순간도 적지 않았다. 기대치만큼이었던 장면도 있었고 기대를 밑돈 캐릭터의 서사도 있었다. 모난 데 없이 둥그렇게, 마치 유람선 같은 동선을 짠 '승리호'는 여러모로 적당한 영화였다.
다만 새로운 영역을 개척한 것으로 평가 받는 영화 '승리호'가 그에 걸맞는 두고두고 회자될 새로운 이야기였냐 하면 그것에는 조금 의문을 갖게 된다. '승리호'는 명백히 우주로 간 조성희 감독의 영화다. '늑대 소년'과 '탐정 홍길동'을 통해 과거 판타지를 선보인 조성희 감독의 세계관, 그 연장선상에 놓인 작품인 것이다. 분명 우주로 나아가며 기술력은 진일보했지만 감독의 세계관은 크게 확장되지는 않았다. 나는 그의 첫 작품부터 그의 영화를 좋아하게 됐는데 '승리호'를 보고 나서 이 창작자에 대한 마음은 싫어지지 않는다에 가까웠다. 아쉽게도 더 좋아지지는 않았다는 이야기다. 조성희의 세계는 여전했다. 처음 보는 우주의 풍경들이 등장한 덕에 일견 낯설게 보이지만 사실은 늘 그랬듯 사랑스러운 동화의 순간들로 가득 차 있는데 그것은 아마도 그가 영화에 가장 먼저 태우는 캐릭터가 어린이여서가 아닐까 생각해 보았다.
조성희 감독의 전작들과 마찬가지로 '승리호'는 꽃님이이자 도로시인 어린이 캐릭터가 어른들을 구원하고 어른들로부터 구해지는 영화다. 조성희 감독은 어린이 캐릭터를 생생하고 자연스럽게 극의 중심으로 안착시키는 탁월한 이야기꾼이다. 그는 어린이의 대사와 몸짓을 통해 극 중 어른 캐릭터는 물론이고 어른 관객들을 무장 해제시키는 방법을 잘 알고 있다. 단편 '남매의 집'부터 '늑대 소년'과 '탐정 홍길동'까지 조성희는 어린이의 손을 잡지 않고는 이야기를 걸어가지 못했던 창작자다. '승리호'의 복잡하지 않은 서사를 강화시키는 이를테면 권선징악의 구조를 그대로 우주로 데려간 조성희는 무엇보다 어린이가 갖고 있는 힘과 아름다움에 대해 골몰한다. 그 덕에 우리는 이 영화 속에서 어른이 되지 못한 성인들이 우왕좌왕하는 장면들에서는 지루함을 견디기가 힘들어진다.
전작 '탐정 홍길동'에서 어린이 캐릭터인 말순이가 가지고 있던 파괴력은 바로 극의 재미이자 핵심이 됐다. 주연인 홍길동보다 먼저 관객의 마음을 훔치고 돌려주지 않는 엄청난 역할을 한 것이다. 아쉽고 흥미롭게도 '승리호' 또한 여전히 성인 배역들이 충분히 매력적이지 못한 영화다. 이 작품에서 성인 캐릭터들이 어린이라는 세계에 진입하지 못한 장면들은 놀라울 정도로 평면적이다. 늑대 소년이 살고 있는, 홍길동이 찾아다니는, 꽃님이를 잃어버린 공간 속에서 조성희 감독은 여전히 어린이의 손을 잡고 있다. 나는 '승리호'의 장면 중 꽃님이가 그린 그림 앞에 멈춘 어른들의 모습이 담긴 장면을 가장 좋아한다. 굳이 우주도 장르도 큰 예산도 필요 없는 그 장면에서 나는 조성희라는 창작자의 또 다른 소우주를 기대하게 됐다. 그는 좀 더 본격적으로 어린이를 탐구할 수 있는 어른이다. 그의 차기작을 여전히 기다린다.
<진명현 독립영화 스튜디오 무브먼트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