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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세상] 베트남에 간 그들은 카메라를 내려놨다
이길보라·곽소진 등 '기억의 전쟁'
진선희 기자 sunny@ihalla.com
입력 : 2021. 02.26.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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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명 영화 제작 5년여 여정
평화기행서 시민법정까지

그곳에도 제주4·3의 광풍을 겪은 이 땅처럼 이유도 모른 채 같은 날 한꺼번에 희생된 영혼들이 있었다. 매년 음력설이 되면 한 집 걸러 한 집씩 제사를 지낸다. 1968년 '구정대공세'로 불린 대규모 군사 작전의 영향이다. 베트남 전쟁 이야기다. 당시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 피해자들의 이야기를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기억의 전쟁'에 얽힌 5년여의 여정이 한 권의 책으로 묶였다. 감독(이길보라), 두 명의 프로듀서(서새롬, 조소나), 촬영감독(곽소진) 등 네 명이 공동 집필한 '기억의 전쟁'이다.

'기억의 전쟁'은 2015년 1월 7박 8일간의 베트남 평화기행을 시작으로 한국 사회에서 20년 가까이 공론화되어왔던 베트남전 민간인 학살 문제에 대한 재판이 열린 시민평화법정까지 닿는다. 참전군인이었던 할아버지를 둔 감독의 개인적 서사에서 출발한 영화는 전쟁과 학살, 국가 폭력의 문제와 만나게 된다.

제작진은 처음 베트남 중부의 학살 현장에 도착해 카메라를 내려놨다. 대신 그들은 꽃과 향을 올리고, 절을 했다. 카메라는 위령제를 끝낸 마을 사람들이 모두 돌아간 다음에 들판에 부는 바람을 오랫동안 찍었다.

영화에는 다낭에서 가까스로 학살을 면했고 이젠 시각장애인이 된 응우옌럽, 같은 마을에서 학살을 목격했고 다낭으로 도망가 한국군의 구두를 닦으며 생계를 이어온 농인 딘껌, 퐁니·퐁넛 학살에서 온 가족을 잃고 고아로 살아온 응우옌티탄 세 사람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그중 시민평화법정의 증언자로 방한했던 응우옌티탄은 대한민국 정부에게 자신들의 이야기를 들어달라고 했고, 학살에 가담한 참전군인에겐 사과를 요구했다. 그날 용기를 내서 단상에 올라온 참전군인은 없었지만 10대 중학생들이 있었다. 아이들은 휴정 시간에 증언자들에게 직접 쓴 편지와 선물을 건네며 "저희가 앞으로 한국 시민들에게 이런 사건에 대해서 책임져야 한다는 걸 알리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했다.

응우예탄은 별도 인터뷰에서 이 장면에 대해 묻자 아이들에게 고마움을 전했다. 그리곤 훗날 성장한 뒤에도 베트남 전쟁의 진실과 정의를 바라는 투쟁에 나섰을 때 계속 응원해달라는 말을 덧붙였다. 북하우스. 1만6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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