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 박산 장편소설 '폭낭의 기억'

[이 책] 박산 장편소설 '폭낭의 기억'
이토록 아름다운 땅에 잔인한 세월
  • 입력 : 2021. 04.02(금) 00:00
  • 진선희 기자 sunny@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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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다섯 권 중 두 권 출간
실존과 허구 인물 오가며

4·3수난사 근원과 끝 탐색

이 책을 낳은 건 현기영의 소설 ‘순이삼촌’이었다. 그는 1980년에 그 소설을 읽으며 “제주에서 시작된 ‘피의 춤’의 광기”가 다가오는 걸 느꼈다고 했다. 그 같은 문제 의식이 옅어지기 전에, 열정이 식기 전에 쓰고 싶었고 40여 년 만에 나온 작품이 장편 ‘폭낭의 기억’이다.

스스로를 "육지것"이라고 칭하는 박산 작가는 '순이삼촌'을 만나며 "저토록 아름답고 그토록 예쁘고 이토록 정겨운 터"가 "잔인한 죽임과 억압과 굴종의 현장"이었음을 알았다. 함덕, 관덕정, 다랑쉬, 빌레못, 북촌 포구, 천지연 등 제주 곳곳 4·3의 사연을 품지 않은 데가 없었다. 박 작가는 처음 세상에 내놓는 이 소설을 통해 그 아프고 눈물나는 "4·3 수난사"를 폭낭의 기억에 새기려 했다.

'제주4·3 역사소설'로 칭한 이 작품은 200자 원고지 6500여 장 분량의 총 5권으로 완간될 예정이다. 그중 이번에 나온 건 '떠나간 사람들', '돌아오는 사람들'이란 부제를 단 1~2권으로, 나머지 3권도 연내 출간을 목표로 뒀다.

장편 집필을 위해 9년에 걸쳐 4·3 관련 자료를 수집하고 탐문했다는 작가는 각종 보고서, 논문, 기사, 사진, 소설, 시 등을 들여다봤다. 일본과 미국 측의 자료도 살폈다고 했다.

1940년대 초반부터 펼쳐지는 소설 속 인물은 실재와 허구를 오간다. 아일랜드 도슨 신부, 신홍연 스님, 오이화 스님, 김익렬, 김달삼 등을 불러냈고 문학적 상상력을 입혀 김율, 김건, 고바랑, 강우 등을 창조했다. 1권에만 30명 가까운 등장인물이 소개됐다. 냉전의 산물로 인식되는 세계사 속 4·3의 위치를 말해주듯, 소설의 공간 역시 제주 하귀중학원에서 하와이 호노울리울리 포로수용소까지 다다르며 비극의 역사가 드리운 이산의 행로를 보여준다.

1~2권에서는 1941년 일본의 진주만 습격으로 전쟁의 소용돌이에 휩싸인 제주 섬을 배경으로 공출과 강제 동원으로 고난 받는 이들의 모습을 그렸다. 태평양전쟁이 종전되자 오사카로 건너갔던 고산지는 귀향 후 학원 설립을 준비한다. 이 무렵 제주에 주둔했던 일본 58군은 철수에 앞서 정뜨르비행장에 은닉해 놓았던 쌀을 소각해 버린다. 이즈음 강제징용된 김율 등은 도쿄 맥아더사령부의 차별적인 재일조선인 한반도 귀환 방침 끝에 고향으로 향할 날을 기다리지만 겨우 1000엔만 지참할 수 있다는 통보에 부산행 군함 승선을 포기한다.

작가는 “4·3이라는 급류의 위아래를 오르내리는 도정에서 작은 물줄기 하나를 만날 수 있었다”면서 “아직 4·3수난의 근원과 끝을 마주하지 못했지만 더 거슬러 오르고 더 따라 내려갈 것”이라고 했다. 간디서원. 각 1만7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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