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무숙의 한라시론] ‘지구의 날’에 생각하는 여성과 기후변화

[민무숙의 한라시론] ‘지구의 날’에 생각하는 여성과 기후변화
  • 입력 : 2021. 04.22(목) 00:00
  • 이정오 기자 qwer6281@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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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8시, 1년 중 딱 10분간 소등을 하는 날이 왔다. 오늘 4월 22일 지구의 날이다. 1970년 4월 미국에서 처음 기념한 이래 51번째를 맞이했다. 다른 생물 종과 함께 살고 있음을 망각하고 인간 중심의 자연개발로 인해 지구의 생태가 얼마나 파괴되고 있는지를 성찰하게 하는 날이다. 제주에서도 지난 19일 도내 35개 기관, 단체가 모여 탄소중립을 위한 실천 선언식을 하며 기념주간을 시작했다.

사회적으로 열악한 지위에 있는 집단일수록 기후변화의 폐해가 더 심각하다는 점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특히 전 세계적으로 기후변화의 위험이 젠더이슈와 밀접하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많은 재난 관련연구에서 자연자원 의존도와 문화적 역할제약이 높은 여성이 남성에 비해 쓰나미나 폭염으로 인한 사망 위험이 더 높고, 식량안보, 감염병, 정신장애, 산모와 태아건강의 위험 등이 더 높아진다고 보고하고 있다. 즉, 기후변화의 성별화된 취약성(Gendered Vulnerability)을 중요하게 조명하는 것이다. 그동안은 산업과 에너지개발의 주 참여자가 남성인 탓에 이러한 젠더이슈는 방치되어왔다. 우리나라에서도 행정안전부가 매년 재난연감을 발행하지만 그 안에 성별 통계가 없어 기후변화로 인한 성별화된 위험성을 특정하기 어렵다.

여성의 재난취약성과 반대로 생명에 대한 감수성과 생태적 삶의 방식에 친화적인 여성의 자질(virtue)이 기후변화 대응의 중요한 덕목으로 중시되기도 한다. 실제로 인도나 캄보디아, 수단 등 여러 국가에서 여성의 임파워먼트 프로젝트와 기후변화 대응 프로젝트가 함께 맞물려 여성의 자립을 이루고 젠더불평등을 감소시키는 사례가 보고된 바 있다.

가까이 볼 수 있는 사례로는 여성의 지도력으로 전면적인 생태적 전환이 뤄지고 있는 도시 파리가 있다. 2014년에 여성 최초로 파리 시장이 되었고 재선에 성공한 안 이달고는 탄소감축을 위해 획기적인 프로젝트들을 감행하고 있다. 시내 전역 30㎞ 자동차 속도제한, 도시숲 조성, 노상주차장 면적 절반 줄이기, 자전거도로·보도·녹도 조성, 집과 학교와 일터를 15분 안에 오가는 '15분 도시', 샹젤리제 거리의 개조계획 등이 그것이다. '생태, 연대, 건강’의 도시를 내세운 안 이달고 시장의 비전은 그동안 남성이 주도했던 기후변화 관련 의사결정에 여성지도자가 지휘봉을 가짐으로써 나타난 혁명적 변화라고 한다면 지나친 비약일까? 부시장 시절 남녀평등과 도시계획분야 정무를 담당한 그녀의 오랜 경험을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기후변화로 인한 제주도의 생태계 변화는 이미 시작됐다. 제주경제에서 1차산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전국 최고이며 여성농가인구는 2019년 기준 4만1073명으로 절반을 상회한다. 여성 어업종사자는 3483명으로 전체 어업중사자중 무려 72%를 차지하고 있다(통계청, 농어업조사, 2020). 온난화의 영향으로 인한 토양의 산성화나 심해진 미세먼지는 농사문제와 함께 야외작업시간이 긴 여성들의 건강에 위협을 준다. 또한 해양산성화나 수온의 상승으로 인한 갯녹음 현상은 해녀들의 소득원을 급속히 감소시키고 있다.

생태·공동체의 가치 회복과 미래세대를 염두에 둔 장기적인 제주사회 패러다임 전환을 위해 기후관련 의사결정 과정에 상당한 변화와 결단이 요구된다. <민무숙 제주여성가족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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