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순자의 현장시선] 어느 경로당 어르신들과 함께하는 간식 시간

[변순자의 현장시선] 어느 경로당 어르신들과 함께하는 간식 시간
  • 입력 : 2021. 04.23(금) 00:00
  • 이정오 기자 qwer6281@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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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로당에서 행정도우미로 일을 한 지도 어언 4년을 넘겨 햇수로는 5년째이다. 은퇴하면서 연금공단의 5060 은퇴자들의 재능기부 일환으로 시작했던 일이다. 그 사이 여러 경로당의 일을 도우면서도 올해처럼 심각함을 못 느꼈다. 아마 경로당마다 식사를 해 먹는 횟수가 달라서 그랬던 것 같다. 올해는 다섯 군데의 경로당을 하루 한 곳씩 가게 됐는데 모두 회원 수도 다르고 환경도 다르다.

어느 시골의 한 곳 경로당의 이야기를 해 보려 한다. 이곳은 회원 수가 70여명의 규모가 큰 경로당이고, 평균 연령은 거의 80을 넘겨 일을 할 수 없는 분들이 오신다. 경로당에 어르신들이 매일 오시고 점심이라는 간식도 드시고 놀다가 가신다. 아침 9시에 문을 열면 한 분 두 분 들어오시면서 10시가 되면 서른 명 정도 오신다.

11시쯤에 총무님은 인원 파악 후 김밥, 꽈배기도넛, 우유, 왕만두, 사발라면 중에서 돌려가며 간식을 주문한다. 12시 10분 쯤 점심시간이 되면 총무님은 은박지에 쌓여진 김밥을 한 줄씩 돌린다. 사방을 둘러보니 어르신들이 다 잡수시지 못하고 반은 남기고 가방에 도로 넣으시는 것을 봤다. 집에 할아버지 드리려고 그러는 것이었다. 옆에 분이 남긴 걸 몰아주시는 모습도 보였다. 아, 이 삼촌들은 몸에 베어있는 죠냥정신이 아직도 남아 있으시구나. 한 끼 점심도 아닌 간식마저도 다 잡수시지 않고 집에 남은 식구를 챙기려는 모습에 가슴이 짠했다. 이 분들은 언제 배부르게 식사를 하신 적이 있긴 하신걸까? 4..3과 그 어려운 보릿고개 시절들을 지내시며 허리띠 졸라매고 절약만 하면서 살다 보니 이제는 그게 몸이 기억하게 돼버렸다. 그런 상념 속에서 문득 이곳의 간식이란 이름의 점심이 어르신들에게 한 끼 점심으로 너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었다.

경로당엔 회원 수가 많아도 간식비 예산은 1/3 수준으로 내려온다. 1인당 2000원씩 나오는데, 요즘은 김밥 한 줄이 2000원이다. 시내에선 2500원이다. 주민센터 담당자는 1000원짜리도 있다며 간식비를 과다 지출하지 말라고 한다. 이곳 경로당은 김밥 값으로 하루 6만원을 지출한다. 나는 회계를 보다가 회장님께 4월엔 마이너스 될 것 같다고 말씀을 드려야 했다. 1월에 코로나로 문을 못 열어 절약한 걸 미루며 3월까지 다 썼던것이다.

나는 여기서 예산 타령을 하려는 것은 아니다. 이 어르신들의 점심 한 끼가 너무 부실한 간식이란 점을 말하고 싶다. 집에서도 혼자 사시거나 하면 대강 식사하시고 경로당에 오시는데, 김밥이나 도넛 두 개, 왕만두 한 개로 점심을 드시는 게 너무 가슴이 아프다. 모든 물가가 오르고 있는데 유독 간식비는 몇 년째 그대로다. 냉.난방비는 따로 나오는데, 어르신들은 잘 안 틀어서 늘 반납한다. 회원 수에 비례한 간식비가 행정편의주의로 지역 모든 경로당에 일률적 지급이다 보니 남는 곳은 남아나고, 모자란 곳은 이 곳처럼 모자란다. 이제 2000원 짜리 김밥 한 줄 도 아닌 반 줄로 줄여야 할 것을 생각하면 가슴이 아려온다. 이분들의 허리띠 졸라메는 고생이 계셨기에 오늘의 우리가 잘 살 수 있게 됐는데, 이제 노년이 돼서도 밥 한 끼 배부르게 대접 못해드리고 있는 복지사회의 현실이 답답하다. <변순자 소비자교육중앙회제주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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