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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觀] 나의 뒤에서
최다훈 기자 orca@ihalla.com
입력 : 2021. 10.22.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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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당신 얼굴 앞에서'.

무언가 힘에 부치고 어려운 일에 맞닥뜨렸을 때 생각한다. 지금의 나 혼자 온전히 이 일을 감당하는 것이 아니라 과거의 나들이 모여 지금의 난관을 함께 헤쳐 나갈 것이라고 그러니 너무 걱정은 하지 말자고. 과거는 흑역사와 추억이 어떤 비율로 섞여 있던지 애틋하다. 후회뿐인 순간들을 돌이킬 수 없어서, 아름답던 시간으로 돌아갈 수 없어서 더욱 그렇다. 종종 과거를 잊고 더 나은 미래로 향하자는 말들이 들리지만 과거를 현재에 데려온다는 것이 꼭 퇴행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닐 것이다. 어제보다 나은 내일이 설렘을 품게 한다면 오늘의 나를 간직할 과거 또한 뭉클하게 마음을 움직인다.

홍상수 감독의 영화 '당신 얼굴 앞에서'는 한 여자가 하루 동안 과거의 자신과 만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여배우였던 상옥이 오랜만에 귀국해 동생의 아파트에서, 과거의 집에서, 과거의 기억이 소환되는 가게에서 누군가와 만나고 무언가를 보고 어떤 이야기를 나누는 이 영화는 사소하지만 대단히 강력한 순간들을 선보인다. 언제부턴가 점점 더 간결하고 함축적인 작품들을 내놓고 있는 홍상수 감독은 길지 않은 러닝타임 안에 삶과 죽음의 이야기들을 마치 장시처럼 들려주고 있다.

감독은 전작인 '강변호텔'에서 노년의 남자가 떠났던 여정을 흑백의 동화처럼 그려낸 바 있는데 눈으로 뒤덮인 강변의 풍경들 위를 걷고 바라보고 멈추어 섰던 배우 기주봉의 뒷모습이 겨울 저녁의 해 그림자처럼 진한 잔상을 남긴 작품이다. '강변호텔'은 죽음이라는 불청객이 설원의 어딘가를 서성이는 듯해서 위태롭기도 서글프기도 한 영화였는데 죽음의 발자국을 덮어 버리는 눈들이 마치 현재를 덮는 마감재처럼 느껴져서 보는 내내 마음이 먹먹하고 어쩐지 서럽기도 했다. 신작인 '당신 얼굴 앞에서'에도 죽음은 예정된 약속처럼 자리를 잡고 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 죽음의 환영은 슬프다거나 쓸쓸하다는 느낌이 아니라 어둠 속을 뚫고 내리쬐는 한 줄기 빛처럼 조용하고 신비로운 움직임으로 다가온다. 극 중 상옥의 말을 빌자면 그녀는 오래 살지 못한다. 그래서 앞으로의 순간들에 어떤 확언도 내리지 못한다. 지독하게 쓸쓸한 고백이지만 그 말을 내뱉은 그녀의 얼굴에는 두려움과 회한을 밀어낸 평화가 자리 잡고 있다. 이상한 일이다. 죽음의 앞에서 나의 과거를 마주한 이가 갖게 된 평온은 어떤 무게이길래 상념들을 누름돌처럼 가뿐히 누르고 있는 걸까.

극 중 상옥은 오랜 시간 떨어져 지내던 동생의 자는 얼굴을 가만히 들여다 보고 훌쩍 커버린 조카가 건넨 선물을 기쁘게 열어본다. 어린 시절 살았던 집을 찾아가 그곳에 가게를 하고 있는 여인과 인사를 나누고 그곳에 살고 있는 어린아이를 품에 안기도 한다.

자신을 캐스팅하고 싶어 하는 감독으로부터 여러 종류의 고백을 받기도 한다. 그 하루 동안 상옥은 커피를 마시고 떡볶이를 맛보고 차 한 잔을 대접받거나 향수병처럼 생긴 술병의 독주로 긴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상옥의 하루는 꿈같기도 하고 여행 같기도 한 우연과 회상으로 가득 채워진다. 사금파리들을 그러모은 듯 반짝이는 상옥의 여정에는 과거의 그녀들이 함께한다. 우리였고 거기였으며 나였고 지금인 상옥의 조각들이 그녀와 어깨를 맞대고 발을 맞춘다. 나인 그녀들은 내 등을 밀어 주기도 하고 손짓으로 길을 안내하기도 한다. 마침내 모두가 함께 자신의 얼굴을 마주 보는 순간이 되면 따로 또 함께했던 간절한 기도들이 지금을 향하고 있었음을 알게 되는데 그 순간에는 오직 한 치 앞에 펼쳐진 천국을 볼 수 있는 축복을 맛보게 된다. 그제서야 몇 갈래인지 종잡을 수 없어 고통스러웠던 기억들을 뒤에 두고 다시 가만한 기도가 시작된다. 그렇게 우리는 나를 받아들여 다시 내가 된다.

<진명현 독립영화스튜디오무브먼트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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