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영종의 백록담] 지나치게 밝은 빛은 공해다!

[현영종의 백록담] 지나치게 밝은 빛은 공해다!
  • 입력 : 2021. 11.15(월) 00:00
  • 현영종 기자 yjhyeon@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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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여년 전의 일이다. 외갓집이 있는 마을 초입에 가로등이 설치됐다. 택지개발로 주택·건물들이 하나 둘씩 들어선 직후다.

문제는 엉뚱한 곳에서 불거졌다. 가로등 옆에 위치한 콩밭의 가을걷이가 엉망이 됐기 때문이다. 불빛 아래의 콩들은 훌쩍 자라고 잎새가 무성했지만 정작 열매는 거의 찾아 볼 수 없었다. 불빛이 미치지 않는 곳과는 천지 차이였다. 벼·콩·참깨·들깨와 같은 작물은 야간에 조명에 노출되면 생장기간이 길어지고, 개화가 늦어져 결국 개체수가 감소한다고 한다.

과도한 빛은 동물들에게도 악영향을 끼친다. 조명 불빛을 햇빛으로 착각한 때문인지 여러 의심되는 행동들이 왕왕 발생한다. 새들이 불을 환하게 밝힌 건물에 충돌해 죽거나 다치는 일이 이어진다. 여름에는 매미들이 밤새껏 울어댄다. 밤을 낮으로 착각해서다. 밤에만 활동하는 야행성 동물들은 먹이활동을 할 수 없어 개체수가 줄어들고 종래에는 사라져 간다.

사람이라고 빛공해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밤 중에 빛에 노출되면 숙면을 취할 수 없다. 특히 밤 중에 분비되는 색소 호르몬인 '멜라토닌'의 분비가 장기간 억제되면 신체회복 능력·에너지 보존·호르몬 균형·기억 저장 능력 등에 이상이 생긴다. 치명적인 질병에 노출될 위험성도 높다. 여성은 유방암, 남성의 경우엔 전립선암의 위험이 높아진다. 실제로 빛공해가 가장 심한 곳에 사는 여성은 가장 적은 곳에 사는 이들에 비해 유방암 발생률이 24.4% 높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 국내 한 대학병원에서 유방암 환자 10만여명을 대상으로 지역 및 빛공해 정도의 상관관계를 조사·분석한 결과다.

우리나라의 빛공해는 세계적으로 악명이 높다. 이탈리아·독일·미국·이스라엘 등 국제 공동 연구팀은 지난 2016년 6월 대한민국을 G20 국가 중 최악의 빛공해를 겪는 나라로 선정, 발표했다. 지구관측 위성이 밤 동안 촬영한 지구사진을 토대로 이 같은 결론을 내렸다. 연구 결과는 국제학술지인 '사이언스 어드밴시스'에 실렸다. 전체 인구에서 빛공해에 노출된 인구 비율은 G20 국가 중 사우디아라비아에 이어 두 번째로 높았다. 국토 89.4%가 빛공해에 시달리고 있어, 면적만으로는 이탈리아 다음으로 심각한 것으로 확인됐다. G20을 포함해 세계에서 빛공해가 가장 심각한 나라는 싱가포르였다.

제주특별자치도가 인공조명으로 인한 불편을 해소하기 위해 '조명환경관리구역' 지정을 준비중이다. 자연환경보전지역·농림지역·주거지역·상업지역으로 구분해 조명환경관리지역을 지정, 빛공해를 체계적으로 관리해 나갈 계획이라고 한다. 제주 또한 빛공해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이 현실이다. 도내 조명 10곳 가운데 6곳 이상이 빛방사 허용기준을 초과하고 있다. 세밀한 조사를 통해 지역특성에 맞는 관리구역을 지정하고, 체계적이면서도 강력하게 관리해 나가야 한다. 청정하고 건강한 제주로 가는 시발점이 될 수 있기를 소망한다. <현영종 부국장 겸 편집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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