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다에 가뭄·말 더한 '五多'
신비주의 벗은 제주의 실체
"자존 지켜온 민중들 기억을"

그는 지금, 제주가 왜 일그러진 표정을 짓고 있는지, 무엇을 기억해야 하는지에 대한 답을 찾고 있다. 제주 미술사를 쓰고 제주 돌담을 해부하며 제주 문화를 종횡해온 제주문화연구소장이자 미술평론가인 김유정씨가 내놓은 '제주해양문화 읽기'다.

'제주의 아방, 포작인'부터 '누가 이어도를 보았다고 했는가'까지 열 다섯개 장으로 묶인 책은 제주에서 '몸으로 살았던 무명의 사람들'을 말하려 한다. 세금과 노역을 피해 고향을 등진 포작인들, '제주의 어멍'이라는 잠녀, 귤과 말을 싣고 가던 덕판배와 뱃사람들, 물길과 표류의 문화사 속에 등장하는 숱한 표류민 등이 있다.

그는 돌 많고, 바람 많고, 여자 많은 '삼다'엔 일본인들이 만든 제국주의적 시각이 내포됐다고 본다. 환상의 섬, 문화유산의 땅 제주는 그저 아름답고 신비스런 여인의 섬이지만 그렇지 않은 게 현실 아닌가. 되레 이 섬에서 피어린 수난의 세월을 겪어온 제주 사람들이다.

그래서 그는 삼다를 만든 제국주의적 한계를 성찰하면서 제주를 바로 볼 수 있는 '역사적인 개념'으로 돌, 바람, 여자, 가뭄, 말을 제시했다. 가뭄과 말을 추가해 '오다(五多)'의 눈으로 제주를 보면 섬의 무늬가 달라진다. 신비주의를 벗은 제주의 역사적 생생함이 한층 선명히 드러난다. 척박한 땅 제주에서 이어져온 목축과 농업사가 그려진다.

제주에서 여성 노동이 많았던 이유는 무엇인가. 가뭄으로 농업기반이 약해지면서 여성들은 바다로 나가 잠녀가 되었다. 물이 부족해 해안가 용천수 주변에 마을이 형성되면서 여인들이 물을 길어나르던 허벅이 탄생했다. 조, 콩, 메밀, 고구마가 농업의 주를 이룬 배경엔 가뭄이 있었다. 목축의 발달로 제주가 주요 말 산지가 되면서 갓공예가 발달한다. 하지만 산업이 활발해질수록 중앙 정부의 요구가 늘어간다. 남자를 대신해 바다로 나가 공물을 충당해야 했던 제주 여인들의 고통이 다시 커졌다.

그가 해양문화를 통해 제주를 읽은 건 '바다는 섬의 목숨을 틀어쥔 생산의 밭'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바다는 제주사람들의 심성을 낳았고 생명의 문화를 꿈꾸게 했다. 그 바다를 소리없이 일궈온 이들은 다름아닌 제주의 '백성'들이었다.

저자는 "제주섬에서 오늘날까지 세대를 이어온 생산자 문화의 위대함을 잊지 말자"며 "스스로 자강하고 자존을 지키려는 이름 모를 제주 민중들의 고단한 삶을 역사에서 바로 일으켜 세우고 싶었다"고 말했다.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의 우수출판콘텐츠 제작지원사업 선정 도서다. 가람과뫼. 2만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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