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미숙 제주춤예술원장은 '정형화된 춤이 아니라 자연이 스스로 다가와 마법처럼 우리를 움직이게 만드는 춤, 공간의 춤'을 꿈꾼다. 지난해 알뜨르비행장에서 촬영한 사진으로 김미숙 원장이 제공했다.

창립 이래 정형화된 춤 벗어나
자연·역사·문화와 만나는 춤
‘불모지’ 제주 무용계서 활약
“사회적 메시지·독특한 상상력”

지난해 10월, 그들은 서귀포시 대정읍 알뜨르비행장에 있었다. 관제탑, 섯알오름 초입, 격납고 등에 살을 닿은 채 몸짓 언어를 풀어냈다. 몸서리치게 하는 전쟁의 기억을 안은 곳에서 그들은 지난 아픔을 어루만지며 평화 세상이 오길 빌었다. 2017제주비엔날레에 참여해 'O간 속 공진화' 퍼포먼스를 펼쳐놓은 제주춤예술원이다.

그날 김미숙 제주춤예술원장은 안무가로, 무용수로 알뜨르 일대를 두 발로 디뎠다. 역사의 현장을 찾을 때마다 온 힘을 쏟아부어 그곳이 들려주는 이야기에 귀기울여온 그의 작업 방식은 알뜨르에서도 다르지 않았다. 사전에 시놉시스를 들고 수도 없이 알뜨르를 답사했다. 공연이 마무리될 무렵 끝내 그는 병원으로 실려갔다.

"지난 3년동안 앞만 보고 달려왔습니다. 제주춤예술원의 활동 경력을 보면 다들 놀라더군요. 다른 단체가 10년치 진행할 내용을 그 기간에 다 했다는 겁니다."

대학 무용학과를 졸업하고 대학원 공연영상학과 석사 과정을 밟은 그는 춤을 놓아본 적이 없다. 제주도립예술단(제주도립무용단) 현대무용 훈련장, 무용협회제주지회 부지회장 등을 지냈고 지금은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 무용 강사, 한국무용교육학회 이사 등으로 있다.

그는 2012년 제주춤예술원을 창립하며 무용 인생의 전환점을 맞는다. 제주춤예술원은 '생태'와 '공간'이라는 두 개념을 기둥으로 삼았다. '정형화된 춤이 아니라 자연이 스스로 다가와 마법처럼 우리를 움직이게 만드는 춤, 공간의 춤'을 꿈꿨다. 생태적 움직임을 통해 사회적 메시지를 던지고 독특한 상상력으로 우리 안에 잠든 예술적 감각을 일으켜 세우려 했다.

"자연이나 공간에 감히 무대란 말을 얹힐 수 없다는 생각입니다. 그저 자연이 만든 빛, 공간이 주는 메시지를 받고 공연할 뿐입니다. 공간이 생명력을 얻을 때 비로소 작업이 시작될 수 있는 이유입니다."

2015년 창단 공연은 성산읍 온평리 여마진개에서 이루어진 '숨비는 해녀, 춤추는 바다'였다. 4·3학살터였던 정방폭포 해원상생굿에서 무자년에 희생당한 친족의 사연을 속울음으로 삼키며 '진혼무-초혼'을 췄고 4·3미술제 '새도림'에서 공연하며 또하나의 작품을 빚었다. 제주시 한림읍 한수리 바닷가에선 영등할망을 맞이하는 퍼포먼스를 벌였다. 제주춤예술원은 제주 역사, 문화, 자연 등과 만나며 '불모지'인 제주 무용계에서 춤의 존재를 일깨웠다.

제주에서 나고 자라 '제주것 답게' 추고 싶다는 김 원장은 아직도 공부할 게 많다고 했다. 테왁을 든 해녀의 애환, 4·3에 얽힌 못다한 말, 제주신화에 담긴 제주 사람들의 고단한 생애를 마주하면 할수록 그런 갈증이 커졌다. 그래서 제주섬에서 살다간 이들의 이야기에 공감하고 그걸 춤으로 담아내려는 그의 노력은 오늘도 계속되고 있다. '제주 무용계의 어른'이 절실한 이즈음, 제주춤예술원의 행보가 훗날 자그만 이정표가 되었으면 하는 소망을 안고.
  • 글자크기
  • 글자크기
  • 홈
  • 메일
  • 스크랩
  • 프린트
  • 리스트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스토리
  • 밴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