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만에 두 번째 시집을 묶은 제주 출신 강순 시인. 현실의 장벽을 무너뜨리며 용기를 내 다시 시인으로 돌아왔다고 했다.

첫 시집 상찬 뒤 오랜 침묵
'마녀 일기' 연작 등 담겨

고통 너머 환상 통한 견딤


그가 첫 시집을 내놓은 해는 2000년이다. '이십 대에는 각시붕어가 산다'로 당시 그를 향한 시평에 이런 대목이 있었다. "언어에서 언어를 받아 내는 뛰어난 산파적 상상력과 존재의 소멸 위협을 무릅쓰고 언어와의 합일을 시도하는 대담함, 그리고 언어와 존재의 경계선을 따라 춤을 추듯 걷고 있는 그 화려함". 언어를 다루는 시인에 대한 지극한 상찬이었지만 그 뒤로 그의 창작집을 만나기 어려웠다.

그 긴 시간을 두고 시인은 '절필'이라고 표현했다. 그는 "어느 날 원고 마감에 쫓겨 발효와 숙성을 거치지 않은 날것들을 발표하고 있더라"며 "나중에 후회가 될 것 같아 1~2년 간의 휴지기를 가져볼 마음으로 시작한 휴식이 생각보다 오래 갔다"고 했다. 3년 전부터 문예지에 작품을 써왔고 웹진 '시인광장'의 편집위원으로 평론도 하고 있는 제주 출신 강순 시인이 두 번째 시집을 묶었다. 20년 만에 출간된 '즐거운 오렌지가 되는 법'이다.

시집엔 슬픔과 풍문으로 대별되는 생의 통점이 흩어져 있다. '슬픔은/ 당신 등을 평생 파먹는 곤충'('어쩌면 나비')이라고 했다. '아픈 데는 없고?'라고 묻는 이에게 '늘 그렇지 뭐'('박쥐의 계절')라는 답이 돌아온다. '나'에게 기억은 달콤하지 않다. '귓속에서 짐승소리가 났다'는 '귀를 씻었다'의 한 구절은 '서랍에서 빛바랜 낡은 두 귀를 꺼내' 천천히 씻어내서야 비로소 '내'가 되는 안온한 순간으로 바뀐다.

'마녀 일기' 연작엔 '나'라는 여자가 겪어온 고통 너머 환상을 통한 견딤이 읽힌다. '덜컹이는 버스를 타고 병원으로' 실려간 '눈사람'엔 통증으로 온몸이 부스러졌던 어느 아이의 초상이 그려진다. 울음을 버리고, 풍문을 버리고 돌아온 뒤 애써 웃으며 '언니, 이제 나는 용감해졌어요'라는 아이. 그래서 '나'는 '안녕'이 불편하다. 안녕하고 싶지만 안녕하다고 말하지 못한다.

그간 번다한 일상을 사느라 다시 시인으로 돌아오기 쉽지 않은 현실에 남모를 눈물을 쏟아냈다는 그는 이제 시라는 마력을 키우려 하고 있다. 낯설고 설레는 생의 마법을 미지의 문장에 실은 채 말이다. 파란. 1만원. 진선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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