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홍식씨 부부에게 제주는 바람부는 섬이다. 날씨가 조금만 흐려도 문이 덜컹덜컹하고 나무들이 흔들릴 정도로 바람이 세차다고. 바람소리를 듣고 있으면 지금 이곳이 제주라는 걸 새삼 깨닫게 된다. 제주사람이 되어간다는 것은 바람에 적응해가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다.
부부는 남군 안덕면 사계리에 있는 산방산 뒷길에서 다시 한번 제주의 바람을 만난다. 탁 트인 해안을 눈앞에 두고서. 제주에 정착한지 1년동안 차를 끌고 제주 구석구석을 정신없이 돌아다니던 중에 ‘찍어둔’ 곳이다.
이들 부부의 말에 따르면 제주의 풍광엔 사람들의 넋을 잃게 만드는 매력이 있다. 산방산 뒷길은 그 중 으뜸이다. 산방산을 쉬엄쉬엄 오르고, 용머리 해안을 찬찬히 돌아보다 뒷길에서 발길을 잠시 멈추면 그 순간 황홀경에 빠진다. 산방산에 올라 구름이 산머리에 걸려있거나 휘몰아치는 광경을 보는 것도 좋지만 뒷길에서 쉬어가는 것이 더욱 멋스럽다.
김이선씨는 20대 초반에 잠시 산방산 주변에 들른 적이 있지만 그때와는 느낌이 다르다고 했다. 이 곳을 찾을 때는 아예 도시락을 싸들고 간다. 문득 앞만보고 달려가는 것은 아닌가라고 느껴질 때, 산방산 뒷길을 찾아 오래도록 거닐고 있으면 마음속에 차오르는 무언가가 느껴진다. 특히 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안개가 옅게 내려앉을 때는 주변의 풍광에 입을 다물지 못한다. 그토록 아름다운 산수화를 본 적이 있을까? 산방산 뒷길은 이들 부부의 안식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