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파아란 하늘을 본다. 계절은 어느덧 겨울로 치닫고, 거리에서 듣는 크리스마스 캐롤은 그야말로 다사다난했던 계미년의 종착역이 코앞에 있음을 실감케 한다.
목석원, 정확히 말하면 탐라목석원은 글자 그대로 제주의 나무와 돌들을 전시해 놓은 곳이다. 척박한 땅을 일구며 살던 우리 제주의 선조들은 집을 짓고, 농기구와 생활용품 등을 만드는데 나무와 돌을 활용해야만 했다.
그런데 목석원에서 보는 나무와 돌은 모두가 하나의 예술품이다. 목석원은 백운철 원장이 지난 60년대 후반부터 제주의 나무와 돌을 수집에 나서 30여년의 세월에 걸쳐 조성한 곳으로 그 의미는 더욱 깊다.
목석원 주차장에서 정문으로 갔다. 이젠 옛 이야기가 되버렸지만 제주의 삼무(三無) 중 하나인 ‘대문이 없다’는 것을 실제로 증명해 주는 정낭과 정주석이 반긴다.
안으로 들어서 찬찬히 둘러보니 대나무숲과 어우러진 자죽헌이 눈에 띈다. 수백년동안 지하에서 썩다가 단단한 수지부분(樹脂部分)만 남아 절묘한 공간미를 형성하고 있는 조록나무의 고사목 뿌리는 예술품 그 자체였다.
한라산 해발 7백m 이하에서 자생하는 조록나무의 고사목(枯死木) 뿌리는 살아서 몇 백년 죽어서도 오랜 세월이 흐르는 동안 약한 부분은 썩어 없어지고 단단한 수지부분(樹脂部分)만 남아 절묘한 공간미를 형성하게 된 것이다. 이들 수 백여 점의 조록형상목 중 20점은 희귀성과 고유성을 인정받아 지난 72년 제주도기념물 25호로 지정, 보호되고 있다.
이어 한라산 영실에서 전해 내려오는 설문대할망과 오백아들들을 위한 위령제단으로 마련된 영실중앙무대와 천태만상의 나무뿌리들을 전시해 놓은 지하의 광상곡(狂想曲) 감상실을 차례로 들르면 돌과 나무의 향연을 체험하게 된다.
동자석 야외 전시장과 돌 민속품 야외전시장에는 수천년동안 이어져 내려온 우리 제주 선조들의 숨결을 느낄 수 있는 생활용구들이 전시되어 있다.
목석원을 둘러보면서 생각나는 곳이 있었다. 지난 84년 머리를 도난당했다가 3년여만에 되찾아 세간의 화제가 됐던 ‘갑돌이의 일생’. 한 켠에 말없이 서 있는 ‘갑돌이의 일생’은 그때의 우여곡절을 아는지 모르는지 관람객들을 반긴다.
목석원에서는 한라산 영실에서 오래 전부터 전해 내려오는 설문대할망과 오백아들들의 전설을 형상화하기 위해 5백개의 위령탑을 쌓는 일, 5백 아들의 슬픈표정을 돌에서 찾아 사진으로 남기는 일, 흙을 빚어 5백아들들의 혼백(魂魄)의 토우를 만드는 일 등 실험적인 작업을 지속하고 있다.
목석원 관람을 마치고 나오면서 잠시 생각에 잠긴다. 섬 전체가 거대한 하나의 바윗덩어리라고 할 수밖에 없는 제주 땅에서 생존하기 위해 나무와 돌을 활용했던 옛 제주인들의 삶을 상상하며, 계미년의 끝을 깔끔하게 마무리 지을 것을 다짐해 본다.
[사진]30여년에 걸쳐 조성된 목석원은 돌과 나무가 하나의 예술품이 되어 도민과 관광객들에게 색다른 볼거리를 선사하고 있다. /사진=김명선기자 mskim@hallailb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