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선문(訪仙門)은 영주십경의 하나인 영구춘화(瀛丘春花)로 유명한 곳으로 그 뜻은 ‘신선이 사는 터에 들어가는 문’이다.
봄꽃이 만발해지는 시기인지라 미처 가보지 못했던 방선문을 찾아가보니 청명한 기운이 감도는게 좋다. 오라동 교정마을을 지나 낯설은 시멘트 도로를 1km쯤 올라가다 보니 한라일보유적지 표석세우기추진위원회가 세운 표석을 발견할 수 있었다. 숲속으로 어렴풋이 보이는 계곡 밑에 방선문 들렁귀가 있음을 알리는 이정표인 셈이다.
숲을 헤쳐 계곡으로 내려가니, 마치 문처럼 솟아 있는 거대한 기암이 버티고 있어 여기가 선계에 들어간다는 ‘방선문’ 임을 알수 있었고, 바위가 들려 있는 모습이어서 ‘들렁귀’라고 불려왔으리라 짐작할 수 있었다. 기암계곡의 풍취가 가득한데 다만 아쉽게도 봄이면 계곡 양쪽에 무리지어 피어나는 진달래꽃은 쉽게 찾을 수 없었다.
방선문 가까이 가보니 듣던대로 마애명들이 수두룩하다. 제주에 부임했던 목사나 판관, 유배왔던 적객들이 자연경관이 수려한 이 곳을 찾아 풍류를 즐기면서 바위나 절벽에 새긴 유람의 흔적들이었다. 들렁귀 바위 위에는 訪仙門이라는 마애각이 현판처럼 보인다. 그 옆에는 등영구(登瀛丘)라는 제목의 시가 새겨져 있는데 신선이 사는 선계(仙界)에 오른다는 의미다. 또다시 환선대(喚仙臺), 우선대(遇仙臺)라고 새겨진 바위들이 이어져 선계에서 영원히 살고 싶은 선인들의 감흥을 미뤄 짐작케 한다.
선인들의 풍류가 이처럼 단순히 풍광에 도취하여 시를 짓는 점잖은 모습에 그쳤을까. 술과 기생들이 있었으니 도가 지나친 장면도 없지 않았으리라. 특히 봄꽃놀이가 안성맞춤인 이곳에서 숱한 일화들이 만들어냈을 듯 싶다.
방선문은 판소리로 불려지다 최근에는 가극으로 사랑받고 있는 배비장전의 무대라는 재미있는 주장도 있다. 목사일행과 꽃놀이를 떠난 배비장이 기생 애랑에게 꼬임을 당하는 장면이 나오는 그 무대가 목사를 비롯한 관리들이 기생들을 거느리고 봄놀이를 즐겼던 방선문이 아니겠느냐는 것이다.
어쨌든 시가지에서 10분이 채 걸리지 않으면서 순식간에 세속을 잊게하는 분위기를 만들어내는 곳이 몇이나 될까. 한천 하류 용연에서 6km 지점에 있는 방선문 계곡은 수려한 기암과 울울한 숲 속에 자리잡고 있다. 계곡안에 빠지니 머무르고 싶은 마음만 생긴다. 짝을 찾는 휘파람새의 사랑노래가 귓속을 간지럽힌다. 더욱이 뚜렷한 용암의 흐름흔적에서 지질사건들을 유추해볼 수 있고 천연생태림의 가치 또한 그만이다.
많은 사람들이 찾는 곳은 아니지만 간혹 마애명의 탁본을 뜨거나 놀러왔다가 쓰레기를 버리는 행위가 사라지지 않고 있다. 자연경관이 빼어난 몇 안되는 역사문화유산인 만큼 어떠한 일이 진행되든지간에 훼손행위는 결코 용납되선 안될 것이다.
[사진설명]제주시 오라동 교정마을을 지나 시멘트도로를 1km쯤 올라가다 숲을 헤쳐 내려가면 마치 문처럼 솟아 있는 거대한 기암이 버티고 있는데 여기가 선계에 들어간다는 ‘방선문’이다./사진=김명선기자 mskim@hallailb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