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만난사람 / 김군선씨]"가족도 땅도 다사라져버렸습니다"

[현장에서 만난사람 / 김군선씨]"가족도 땅도 다사라져버렸습니다"
  • 입력 : 2007. 08.31(금) 00:00
  • 강시영 기자 sykang@halla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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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군선(60세·사진)씨는 원래 와흘2구 물터진골 출신이었으나 4·3당시인 1948년 11월 13일 군인들에 의해 학살당하던 날에는 궤뜨르 집에서 당했다.

"그 당시 아버지와 어머니는 일찍 도망쳐 고평동과 대흘 사이 곶자왈에 숨어있었습니다. 나는 태어나 얼마 안되었기 때문에 아버지는 늘 불안했나 봅니다. 아버지는 우리를 살리려고 그냥 군인들에게 자수하여 주정공장에 갇혀버렸고 어머니와 나도 주정공장 수용소에 있게되었습니다." 그는 이후 잡초처럼 떠도는 인생이 되고 말았다. 이후 고모와 함께 조천에서, 조부·조모와 함께 삼양에서 살며 성년이 되었다. 아버지는 바로 사촌형과 함께 대전형무소에 보내졌고 어머니는 이후 개가해서 떠났기 때문이다.

"저의 작은 할아버지의 집안은 4·3으로 완전히 대가 끊겼습니다. 작은 조부·조모를 포함하여 아들4명, 딸1명, 며느리, 손자 등 8명이 그 사건으로 전부 희생되었습니다. 유일하게 살아났던 고모는 우리와 함께 살다가 몇 년전 세상을 떴습니다."

가족의 비극을 떠안은 김군선씨는 요즘 4·3유족회 중부지회장을 맡아 일하고 있으며, 고평동과 수기동의 빼앗긴 땅을 찾는 작업도 열심히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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