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라산 '환상숲길'을 가다(19)]역사·문화(하)<br>서귀포자연휴양림~물찻오름~관음사~거린사슴

[한라산 '환상숲길'을 가다(19)]역사·문화(하)<br>서귀포자연휴양림~물찻오름~관음사~거린사슴
조선시대부터 1970년대까지 제주인들 생활사 응축
  • 입력 : 2009. 09.03(목)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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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라산 환상숲길에서는 방화용 돌담을 만난다. 1970년대 중반 약 3년여에 걸쳐 한라산 국유림을 보호하기 위해 국유림 경계지를 에워쌓은 방화선이다. /사진=강경민기자

[환상숲길에서 만난 제주인의 생활사]

잣성 쌓고 산장 만들어 山馬 방목 목축생활

일제강점기 제주인 동원 '하치마키'도로 개설

표고버섯 재배·숯가마터·방화용 돌담 등 뚜렷


한라산 환상숲길에는 다양한 제주도민의 생활모습이 숨겨져 있다.

첫째, 숲길을 걷다보면 조선시대를 살았던 제주인들의 목축생활사를 만난다. 도민들은 물찻오름과 찻오름 일대에서 잣성을 쌓고 산장을 만들어 산마(山馬)를 방목했다. 제주시 열안지 오름 일대에서는 국마를 맡아 사육하기도 했다. 특히 이곳에는 십소장(국영목장) 중의 하나였던 4소장이 설치되었다.

인근 묘지 비석에도 '四所場'이라는 용어가 표기되고 있다. 19세기말(갑오개혁 이후)을 전후한 시기에 제주인들은 와해된 국마장터로 달려가 화전을 개척했다. 이곳은 무주공산으로 남아있었기 때문에 경쟁적으로 화전개간을 한 것이다. 그 결과 해발 400~800m 일대를 중심으로 화전동(火田洞)들이 분산, 배치되어 화전벨트가 만들어지기도 했다. 당시 화전동의 위치는 1899년에 제작된 <제주지도>에 소상히 나와 있다.

둘째, 한라산 환상숲길에서는 일제강점기에 개설된 '하치마키' 도로를 만난다. 당연히 제주인들을 동원하여 만든 도로였다.

'하치마키'란 머리 둘레를 감은 천이란 의미다. 현재 이 도로는 한라산 남사면인 서귀포시 답사코스에 원형이 잘 남아있다. 이러한 현상은 일제가 수탈해 갔던 나무(난·온대림)들이 일조량이 많은 남사면에 숲을 이루고 있었다는 점과도 관련될 수 있다.

이런 면에서 이 도로는 일본군 작전용 도로라기보다는 임산자원 수탈을 위한 임도일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이 도로가 구체적으로 언제, 어떤 목적으로 개설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추후 구체적인 조사가 요청된다. 즉, 일제가 1937년도에 '제주도개발사업계획'에 따라 만들던 '환상선(環狀線)'이 태평양전쟁이 발발하면서 군사용도로 전환된 것인지, 한라산의 임산자원을 수탈하기 위해 만들어진 임도인지에 대해 해명이 요구된다.

셋째, 한라산 환상숲길에서는 표고버섯 재배터를 만난다. 특히 한라산 남사면 답사코스에는 표고버섯 재배터가 산재해 있다. 이 일대는 표고자목이 자생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표고버섯재배는 1905년경부터 일본인들이 먼저 시작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 곳에 고용된 제주인들은 일본인들로부터 재배기술을 전수받아 버섯재배에 동참할 수 있었다.

버섯재배지인 해발 700~800m 일대는 지형성 강수와 안개가 빈발하여 이곳에서 생산되는 버섯 건조를 위해서는 숯이 필요했다. 따라서 버섯재배지 근처에는 숯가마터를 쉽게 찾을 수 있다. 현재 한라산 옛 표고재배장은 대부분 폐허로 남아 있다. 방치된 표고재배터를 하루속히 복원, 표고생산과 건조과정을 재현함으로써 이것을 문화자원화하는 것도 바람직하다.

▲물찻오름 일대에서 잣성을 쌓고 산장을 만들어 산마를 방목했던 현장을 확인할 수 있다. 학술조사팀의 세화고 강만익 선생(사진 왼쪽)이 현장에서 제주인의 목축생활사를 설명하고 있다.

넷째, 한라산 환상숲길에서는 흑탄과 백탄을 생산했던 숯가마터를 만난다. 특히 남원읍 신례1리 보리악, 이승악 일대에는 백탄생산을 위한 숯가마 터와 표고버섯 건조장터가 남아있다. 주민들에 의하면, 여기서 생산된 백탄('굴탄')은 일본군 군수품으로 납품되기도 했다고 한다. 품질이 다소 떨어지는 흑탄은 표고버섯을 말리는 연료로 이용되기도 했다.

다섯째, 한라산 환상숲길 주변에서는 4·3주둔소를 만난다. 한라산 숲지대가 은신처로 이용되었던 것이다. 이곳은 한국 현대사의 비극인 제주 4·3 역사의 현장이기도 했다. 환상숲길 답사과정에서 그동안 알려지지 못했던 4·3주둔소를 새롭게 발견하여 세상에 알린 것은 큰 수확이었다.

여섯째, 한라산 환상숲길에서는 방화용 돌담을 만난다. 이것은 제주시 관음사 야영장에서 천아오름 일대를 연결하는 숲길에 잘 보존되어 있다. 1970년대 중반 약 3년여에 걸쳐 한라산 국유림을 보호하기 위해 국유림 경계지를 에워쌓은 방화선이다. 도민들에게 일당을 주면서 돌을 운반하여 다듬으며 쌓게 했다고 한다. 이른 봄 마을공동목장에서 전통적으로 이루어졌던 '방앳불놓기'로 인해 한라산 국유림 경계지 부근에서 산불이 자주 발생하자 국유림 보호를 위해 방화선을 쌓았다고 한다.

한라산 환상숲길에는 제주인의 생활사가 남아있다. 목축생활, 잣성축조, 화전개척, 나무벌목, 버섯재배, 숯굽기, 방화선 구축 등이 그것이다.

이 곳에는 조선시대부터 1970년대까지 도민들의 경험했던 생활의 여러 모습들이 숲 속에 고스란히 남아있다.

이러한 생활사의 흔적들을 이번 한라일보에서 실시한 '한라산 환상숲길' 탐사를 통해 확인한 것은 큰 수확이었다. 나아가 숲길 탐사를 통해 그동안 단순히 말로만 떠돌던 한라산지(山地) 생활사 및 개척사를 공부할 수 있었다. 숲 속 돌담 곳곳에 이끼를 뒤집어 쓴 채 남아있는 제주 역사와 문화를 만난 것은 행운이었다.

그동안 앞서 가시덤불을 헤쳐주신 제주특별자치도산악연맹의 '한라산 산쟁이님'들께 감사드린다. <강만익·세화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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