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인의 장수음식을 찾아서](3)성읍리의 메밀이야기-2

[제주인의 장수음식을 찾아서](3)성읍리의 메밀이야기-2
"가족 간 情 나눴던 '부조음식'을 기억하시나요"
  • 입력 : 2012. 01.31(화)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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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조금 대신 빙떡, 돌레떡 만들어
실버웰빙시대 건강음식으로 주목

먹을 것이 없어 항상 배를 곯았던 시절. 중산간 마을 주민에게 메밀은 없어서는 안될 식재료였다. 메밀은 척박한 환경에서도 잘 자라 쌀과 보리를 대신해 도내 산간지역 어느 곳에서도 흔하게 먹어 왔다. 또 끈질긴 생명력을 가지고 있어, 장수음식의 식재료로도 손색이 없을 정도다. 예전 성읍민속마을(서귀포시 표선면 소재) 주민들은 메밀로 만든 전기떡(빙떡), 돌레떡, 만두 등의 음식이 친척이나 지인의 집에 큰 일(결혼·장례식 등)을 치뤄야 할 때 부조로 작은 소쿠리 가득 만들어 갔다. 이는 모자란 부조금을 대신해 정성스레 만든 메밀요리를 전해주며 많은 도움을 주지 못하는 미안함을 달랬고, 큰 일을 치르는 친척의 일손도 줄이기 위함이었다.

▲성읍리의 메밀요리. 사진은 시계방향으로 전기떡(빙떡), 메밀칼국수, 메밀만두, 돌레떡, 메밀묵 /사진=김명선기자

결혼·장례식을 치르는 집에서는 이들이 준비해온 음식을 반으로 나눠주기도 하고, 큰 일을 치르는 동안 도와주는 사람들이 먹을 수 있도 록 했다. 지난 28일 메밀가루를 이용한 전기떡(빙떡), 돌레떡, 만두, 칼국수, 묵 등의 요리가 마을 아낙들에 의해 전통방법으로 재연됐다. 성읍마을 아낙들은 자신들이 만든 요리마다 사연을 늘어놓았다. 홍복순(66·여)씨는 "솥뚜껑에서 전기떡을 만드는 냄새가 나게되면 어김없이 형제자매들은 어머니 옆에 앉아 이제나 저제나 떡하나 주기만을 기다렸다"며 "어쩌다 가 어머니 몰래 전기떡을 하나 집어 먹다가 들키는 순간은 크게 혼이 났는데, 소쿠리 가득 전기떡을 채워서 가져가야 하는데 자식 모두에게 나눠주다 보면 모자랄 까봐 그랬던 것 같다"고 회상했다. 이어 "메밀칼국수는 당시에는 상당히 귀한 음식이었고, 제사·차례상에 올라가는 묵은 직사각형이나 나비모양으로 잘라 상에 올 렸다"고 말했다.
이날 고향인 제주를 떠나 부산에 살며 딸아이와 함께 관광을 온 한 남성은 메밀 만두를 하나 먹더니 "어릴적 어머니가 만드셨던 모습이 생생하게 기억 난다"며 "어머니가 만든 것과 맛도 똑같아 눈물이 날 정도"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이처럼 먹거리가 귀하던 시절에 먹었던 음식이 각종 인스턴트 음식에 밀려 점점 사라지고 있다. 하지만 실버웰빙시대가 도래하면서 어른들의 추억 속에 기억되는 토속음식들이 건강음식으로도 거듭나고 있다. /김명선기자 nonamewind@ihalla.com

"제주의 자연을 닮은 메밀요리"
걸쭉한 메밀반죽을 빠르게 숟가락으로 떠내 펄펄 물이 끓는 무쇠 가마솥 안으로 넣는다. 거기에 소금으로 간을 하고 끓여내면 메밀 조배기가 된다. 국물 위로 둥둥 떠오른 조배기의 거무튀튀한 색과 우둘투둘한 형상 거친 촉감이 영락없는 제주의 흙과 돌과 바람을 닮았다. 그래서인지 그 맛 또한 화려하거나 자 극적이지 않고 순하고 담백하다. 메밀 죽, 메밀 칼국수, 메밀 묵, 돌레떡, 빙떡 모두 다른 음식에도 불구하고 이들 음식의 저 밑바탕에는 이런 순한 맛이 깔려있다. 메밀은 거친 땅이나 추위 같은 환경에 잘 적응하고 생육기간마저 짧다. 재배조건이 이리도 단순하니 그 맛 또한 순박한 듯하다. 과거 농사를 짓기에 척박했던 제주 나 강원도와 같은 곳에서 메밀이 그들의 삶과 같이 했던 이유다. 그러기에 메밀음식을 만드는 내내 이야기가 끊이지 않는다. 이런 음식 안에 기록되어지지 않은 서 민들의 역사가 있고, 문화가 스며들어 있었던 것이다. 이효석의 소설 '메밀꽃 필 무렵'의 배경무대였던 강원도 봉평은 '메밀'하면 떠오르는 대표적인 명소다. 소설의 유명세가 훌륭한 관광 콘텐츠가 되어 해마다 메밀꽃 들판을 보기위한 사람들이 봉평을 찾는다. 그렇다면 제주에서 만나는 메밀에서는 무엇을 기대할 수 있을까? 자극적인 맛과 삶에 지친 현대인들에게 시골할머니의 품안처럼 소박하지만 편안한 맛과 느낌을 전해 줄 수 있다면 어떨까? 정지에 솥을 걸고 숭덩숭덩 무를 썰고 메밀반죽을 하며 들려주는 이야기에 귀가 즐겁고 따뜻한 메밀 칼국수 한 그릇에 입이 행복했던 오늘의 기억을 나 혼자만 안 고 있기에는 아쉽다. 진정한 참살이의 경험을 제주의 메밀요리에서 다 함께 느껴 보시길…. <조미영·자유여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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