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당굿 기록](10)조천리 잠수굿

[제주당굿 기록](10)조천리 잠수굿
"살아남은 사람들을 위해 '굿'을 하는 거 아니라게…"
  • 입력 : 2013. 05.09(목) 00:00
  • 김명선 기자 nonamewind@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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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천리 잠수들은 매년 잠수굿을 개최하는데 2년마다 시왕맞이 큰굿을 한다. 사진은 시왕맞이 굿을 집전하는 김순아 큰심방. 사진=김명선기자

매년 잠수굿 열려…2년마다 시왕맞이 큰굿 집전
해녀에게 모든 걸 내어주는 바다에 고마움 전해


제주시내에서 동쪽으로 약 12km를 달리면 조천리라는 마을이 있다. 조천리는 제주에서도 항일정신이 투철했던 마을로 알려진 곳으로 연대, 연북정, 고가옥 등이 잘 보존되어 있는 유서깊은 마을이다. 이 마을 해녀들이 매년 영등철이면 잠수굿을 한다. 또 2년마다 시왕맞이라는 큰굿을 통해 잠수들의 무사안녕을 기원한다.

▶죄의 크고 작음 심판하는 시왕=조천포구에 위치한 조천리 어촌계창고에는 시왕을 모시기 위한 상이 차려졌다. 시왕은 인간의 명이 다 되면 적패지를 써서 강림차사에게 주면 차사는 맨 처음 송당리 본향당신에게 와 그 적패지를 보인다. 송당 본향당신은 호적을 둘러보고 아무 마을에 가 보라고 하면 차사는 그 가르쳐 준 마을의 본향당신에게 가 거기서는 그 당신이 가리켜 주는 집으로 가서 그 사람을 잡아가게 된다는 것이다. 이렇듯 시왕은 우리 인간의 명이 다 되면 차사를 시켜 잡아가고 그 죄의 크고 작음에 따라 심판하는 큰 신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시왕을 맞이하는 제차에서는 심방은 매우 격렬한 도랑춤을 추게 되고 그러다가 가끔은 실신하는 심방도 종종 볼 수 있다.

시왕을 맞는 굿은 큰굿이요 이 굿에서 시왕이 오시는 길을 깨끗이 닦는 듯이 질침이 있고 체소본풀이가 있고 액을 막아내는 액막이가 있고 시루떡을 반공으로 올렸다 잡았다 하는 낙가도전침이 있으며 이 시왕이 타고갈 말을 단속하고 보내는 준비의 삼천군병질침 등으로 그 의식도 복잡하게 이루어진다.

그러나 복잡하게 치러지는 의례라 할지라도 의례의 근본 원리는 우리 인간들의 윤리 도덕적인 바탕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것임을 알 수 있게 한다. (제주무속학사전)

▲큰아들인 김영철 심방의 요왕맞이 굿을 지켜보고 있는 김순아 큰심방.

▶"굿은 살아남은 사람을 위해 하는 거 아니라게…"=김순희(80)씨는 올해 64년째 잠수일을 해오고 있다. 80살이 되었지만 액막이를 하면서 심방에게 올해도 물질을 해도 되는지 묻는다. 점괘를 받아든 심방은 "나이가 있으니까 조심해야 한다"고 거듭 얘기한다.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나 김씨의 부모는 교육에 남다른 열정이 있어서 그랬는지 딸아이를 고등학교에 진학시키기 위해 전남 목포로 보내려 했다. 하지만 6·25전쟁으로 인해 그 계획은 실패로 돌아갔고, 김씨는 그때부터 해녀일을 시작했다. 20살부터 32살이 될때까지 강원도와 경북 울산 등지에서 물질을 했던 김씨는 재혼을 하면서 조천리에 정착했다.

80살이 되었지만 자식들에게 짐이 되기 싫어 아직까지도 물질을 하고 있는 김씨는 동료들이 바다에서 죽어가는 모습을 수차례 지켜봤다. 오늘처럼 굿을 할때면 바다에서 물질을 하던 동료들의 모습이 선하단다.

김씨는 "지금처럼 고무옷도 없던 시절에 강원도 최전방에서 미역을 캤다. 추운 것도 모르고 돈을 벌어야 한다는 생각에 무작정 물질만 했다"며 "바다는 잠수들에게 많은 것을 내어준다. 1년에 한차례만이라도 바다에 고마움을 표시하기 위해 잠수굿을 한다"고 말했다.

▶"소지에 모든거 담아 보냄수다. 다 막아줍써"=소지란 소지원정(燒紙寃情)의 준말로서 신에게 죄에서 풀어주십사 하여 기원하고 지전(紙錢) 대신 불태우며 인정거는 백지를 뜻한다. 그리고 소지점이란 제의 때 신전에 올렸던 백지(白紙)를 불태우며 그것 불타는 모양을 보아 길흉을 판단하는 점법을 말한다. 신전에 정성을 드리고 소지를 불태우면 그 불탄 그스럼이 반공으로 올라가면 길조라 하나, 만일 그 사람이 그 해의 운수가 흉하겠다면, 그 소지를 태운 그스럼은 땅 바닥으로 떨어지게 된다는 것이다.

심방에게 소지를 받아든 해녀들은 한곳에 모여 소지에 불을 붙이면서 "다 막아줍써, 모두 잘되게 해줍써"라고 주문을 외우듯이 내뱉는다

제주의 큰심방 김순아씨 "심방은 단골 무서운 거 알아야…"

23살이 나던 해에 심방집안에 시집오면서 심방일을 해야했던 김순아(72·여·사진) 큰심방.

김 큰심방은 몸이 아파서 29살이라는 젊은 나이에 세상을 등진 남편의 뒤를 이어 본격적으로 굿을 집전했고, 32살이 되던 해에 시왕맞이 굿을 하면서 큰심방이라는 칭호를 받게 된다. 김 큰심방은 이제 심방일을 한지 40여년이라는 세월이 흘러 큰아들에게 명도를 넘겨줄 계획이다.

그녀의 시집은 시조부모때부터 가족 모두가 심방일을 했을 정도로 도내 심방사회에서는 명문가 집안이다.

김 큰심방은 "처음에 남편을 맞나 시집왔을때는 심방일을 할 생각이 없었다. 하지만 결혼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남편에 건강이 좋지 않았다"며 "그래서 남편과 함께 굿을 하기 시작했고, 32살이 되던해에 처음으로 단골의 큰 굿을 했다"고 설명했다.

김 큰심방이 활동하는 지역은 제주시 함덕리 지역이다. 현재 제주시 선흘1리 알당에 당맨심방이기도 하다.

조천리 잠수굿은 고 안사인 심방의 부탁을 받고 집전하고 있다.

김 큰심방은 "지역에서만 심방일을 하다보니 단골과의 유대관계가 남다르다. 정성들여 기원하는 단골때문에 굿을 할때 항상 최선을 다한다"며 "심방은 단골의 무서움을 알아야 한다. 최근 다른 심방들이 굿을 하면서 현대식으로 고쳐서 하는 경우가 있는데, 단골들의 정성을 생각하면서 이는 그릇된 행동처럼 보이는 만큼 자신이 배운대로 정성껏 굿을 집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열정적으로 굿을 집전하는 그녀의 모습을 보면 한 겨울임에도 굵은 땀방이 연신 흘러내리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을 정도로 제차가 끝날때까지 열과 성의를 다한다.

조천리 잠수굿이 열리는 현장에는 김 큰심방의 큰아들인 김영철(50)심방 함께 굿을 집전했다. 김 큰심방은 대학교까지 나온 아들이 평범한 생활을 했으면 하는 바람이지만 몸이 아파 별다른 일을 하지 못했고, 결국에서 15년전부터 심방일을 배우고 있다. 내년부터는 큰아들이 조천리 잠수굿의 메인심방이 되어 굿을 집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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