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광부 2013년 문화관광축제 40선 들불축제 유일
제주축제육성위 유사축제 구조조정 권고도 무시
"자생력 확보·주민 자발적 참여 전문기구 구성을"
몇해 전 제주시 중산간마을에서 꽃을 주제로 특화된 축제를 연다는 언론보도를 보고 가족과 함께 축제장을 찾은 김모씨는 실망할 수밖에 없었다. 축제장에서 즐길 수 있는 프램이라고는 꽃나무를 보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없었기 때문이다. 내용이 부실하다보니 토요일 오후인데도 축제장 내 관람객은 자신의 가족 3명뿐이었고 나머지는 지역주민들이었다. 심지어 주민들은 삼삼오오 모여 축제장 한가운데서 윷놀이를 하거나 그 옆에서 장작불에 고기를 구워먹고 있었다. 그야말로 동네잔치보다 못한 축제였다.
# 축제 평가 무색
축제가 적은 비용으로 지역의 이미지를 살리면서 높은 이익을 창출하는 관광상품으로 인식되면서 전국의 각 지자체가 경쟁적으로 축제를 개최하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는 연간 약 1000개의 축제가 개최되고 있다. 제주지역에서도 해마다 40~50개의 크고 작은 축제가 열리고 있다. 그러나 극단적이긴 하지만 앞에서 제시한 사례처럼 제주지역에서 이뤄지는 축제 중 일부는 지역의 정체성은커녕 대외적 이미지만 실추시키고 있는 축제도 허다하다. 해당 축제 개최지 주민들의 공동체 의식을 회복시키는 기능을 발휘할 수는 있겠지만 이마저도 일부 주민만 참여하면서 주민 간 또 다른 반목과 갈등을 부추길 우려를 낳고 있다.
이런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제주특별자치도가 축제육성위원회를 운영해 축제를 평가하고 발전 방안을 모색하고 있기는 하다. 그러나 축제를 주관하거나 관련 보조금을 관리하는 부서가 제주도 문화정책과와 관광정책과, 읍·면·동 등으로 나뉜데다 구심체가 없어 지역에서 개최되는 축제의 정확한 숫자도 파악하기 어렵고 이 때문에 전반적인 평가도 사실상 불가능한 탓에 사후관리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더 큰 문제는 축제 평가 과정에서 축제육성위원회로부터 통폐합하라고 권고를 받는다 해도 지역 도의원들의 이해관계에 따라 매년 비슷한 규모의 보조금이 지원되는 현상이 반복되고 있다는 점이다. 실제로 지난 2012년 제주도축제육성위원회는 유사 축제를 구조조정하기 위해 일부 축제에 대해 차별성이 떨어지고 콘텐츠가 약하다면서 통합하라고 권고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렇다보니 제주도에서 개최되는 축제 중 최근 문광부가 발표한 2014년 문화관광축제 40곳에 선정된 것은 들불축제가 유일했다. 그나마 '우수축제'도 아니고 하위로 평가되는 '유망축제'에 선정됐으니 관광1번지라 불리는 제주도가 '굴욕을 당했다'는 평가가 무색하지 않았다. 국내 어느곳보다 더 많은 축제가 열리고 있지만 양이 질을 담보하지 못해 축제의 경쟁력이 점차 사라지고 있는 현실을 보여주는 사례다.
# 성공 축제의 길
문화체육관광부가 2014년 대표 축제로 선정한 축제를 살펴보면 제주지역 축제의 지향점을 가늠해볼 수 있다. 김제지평선축제는 우리나라 농경문화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축제로 평가됐으며, 화천산천어축제는 CNN으로부터 세계 겨울의 7대 불가사의로 소개되는 등 극찬을 받았다. 최우수축제로 선정된 광주7080축제와 강진청자축제, 강경젓갈축제, 무주반딧불축제, 문경찻사발축제, 이천쌀문화축제, 자라섬재즈페스티벌, 진도신비의바닷길축제 역시 지역의 색깔이 묻어나고 있다는 평가를 받았다. 대구약령시한방축제와 담양대나무축제, 순창장류축제, 한산모시축제, 통영한산대첩축제 등도 지역과 축제내용이 연관성을 보여 우수축제로 선정됐다.
제주지역에서 열리는 축제 중에서도 대규모로 개최되는 축제장에 가면 예외없이 볼 수 있는 광경이 불꽃놀이다. 전체 축제 일정 중 극히 짧은 시간에 시각적 효과를 노린 이러한 불꽃놀이에는 많게는 수억원까지 투입되고 있다. 킬러콘테츠(대표 프로그램)가 없고, 차별화된 프로그램이 부족해 제주지역 축제가 지닌 고질적인 문제 때문이다. 이와 함께 전문가들은 축제 개최 목적 불분명, 비슷한 프로그램의 천편일률적 축제 양산, 매년 같은 프로그램 편성 또는 이벤트성 공연과 무대행사가 주류를 이룬 악순환, 축제위원의 한시적 활동으로 기획·운영 전문성 미흡, 예산 부족 등의 문제를 지적하고 있다.
강경식 제주도의회 문화관광위원회 의원은 "제주 축제는 여러 순기능에도 불구하고 지역문화 발전이나 정체성과 너무나 거리가 멀고 평가를 위시한 단편적 예산지원, 축제 목적 상실, 시기의 중첩성 등 지역주민과 관광객이 배제된 축제라는 비판에 직면해 있다"며 "축제정책의 문제점을 분석해 축제 자생력을 확보하고, 도민과 관광객이 함께하는 정체성을 지닌 축제정책이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10월 제주시 삼양동 소재 제주커피농장에서는 제4회 제주커피축제가 열렸다. 제주산 커피가 제주에 뿌리를 내리기 염원한 지 7주년 기념행사로 열린 당시 축제는 제주지역의 축제 중에서는 극히 드물게 입장료를 받아 진행했지만 많은 인파가 몰려 축제의 열기를 달궜다. 단순한 기호식품을 넘어 이미 문화로 자리 잡은 커피를 이용한 특화된 이벤트가 이색적인 축제로서 성장 가능성을 보여준 사례다. 그러나 올해 처음으로 보조금을 지원받아 진행된 이 축제는 2013년 축제 평가 대상은 물론 내년 지원 대상에서도 배제됐다.
문성종 제주한라대학교 관광경영과 교수는 "지역축제가 정체성을 유지하면서 지역문화의 뿌리에 기반한 축제로 지속성장하기 위해서는 지역 고유성에 걸맞는 테마를 가져야 하고, 지역주민의 자발적 참여가 이뤄질 수 있는 전문기구 및 추진체계를 구성해 기획에서 운영단계까지 산·관·학 전문가 컨설팅을 통한 전문성을 확보해야 한다"며 "지역 내 다양한 자원들을 소재로 삼고, 공정한 지역축제평가를 위한 시스템을 개선해야 할 것"이라고 제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