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정 겨울스타킹을 벗을 수 없어"

"검정 겨울스타킹을 벗을 수 없어"
김하은 청소년 소설 '얼음붕대 스타킹'
  • 입력 : 2014. 07.25(금) 00:00
  • 진선희 기자 sunny@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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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일곱살. 꽃다운 그 나이에 소녀는 어둡고 인적없는 공터에서 한 겨울을 만났다.

얼굴 없는 두 사람의 취객, 내팽개쳐진 책가방과 찢겨나간 교복치마, 뺨을 갈기고 온 몸을 밀착해 들어오는 거대한 공포. "무슨 일이 있어도 두려워하면 안돼!" 소녀는 머릿속을 맴돌고 있던 외침에 따라 가까스로 성폭행을 피했지만 누군지 모르는 사내로부터 당한 폭력적이고 굴욕적인 대우는 아이를 차츰 고통으로 몰아넣는다.

김하은의 청소년 소설 '얼음붕대 스타킹'은 주인공 선혜가 겪은 충격적인 사고로 시작된다. 비밀에 부쳤던 불운한 사고가 학교 안에서 심심풀이 이야깃거리로 소비되며 성폭행 사건이라고 퍼져나가자 선혜는 온 몸이 얼어붙는 듯한 추위에 시달린다. 교복이 동복에서 춘추복으로, 다시 하복으로 바뀌는 동안 에도 검정색 겨울 스타킹을 벗을 수 없는 것은 그 때문이다.

'얼음붕대 스타킹'은 성폭력 문제를 정면으로 다루면서도 소재 차원에서 접근하는 대신 십대 특유의 에민한 정신세계에 가해진 폭력의 문제로 확장시킨다. 앓아누웠으면서도 아무 일 아니라고 고집을 피우는 엄마를 향해 선혜가 "제발, 제발! 아무 일도 없긴 뭐가 없어!"라고 외치며 유리창을 박살낼 때 그것은 타인의 고통에 둔감하고 옆 사람의 괴로움에 눈감을 것을 요구하는 세상을 향해 있다.

누군가에 의해 구원받기 기다리던 선혜가 창식이를 만나 위로받고 자기 안에 담긴 용기를 되찾는 모습도 눈길을 끈다. 십대를 위한 연애소설로 읽히는 대목이다. 바람의아이들. 9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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