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은행원은 어떻게 철학에 빠졌나

평범한 은행원은 어떻게 철학에 빠졌나
제주출신 강민혁의 '자기배려의 인문학'
  • 입력 : 2014. 09.12(금) 00:00
  • 진선희 기자 sunny@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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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담배 끊게 만든 철학공부
미셸 푸코에서 박지원까지

힐링이나 자기 계발이 아닌
자기와 세상을 바꾸는 사유

의사가 그에게 말했다. "선생님, 술 담배를 그렇게 하시면 정말 죽습니다." 이럴 때면 많은 직장인들이 운동을 하거나 어학을 배우며 술담배를 끊고 '살아나는 길'을 구할 테지만 그가 홀로 찾은 곳은 인문학 연구공간 '수유+너머'였다. 신문 등에서 봤던 기억이 퍼뜩 떠오른 그는 벤야민의 '아케이드 프로젝트' 강좌에 등록한다. 눈이 펄펄 오는 날, 처음 들어선 강의실에서 그가 느낀 것은 아름다움이었다. 그날 그는 술과 담배를 끊었다. 그게 6년 전의 일이다.

그는 바로 '중년 은행원'인 제주출신 강민혁씨다. 그가 쓴 '자기배려의 인문학'은 평범한 직장인이 인문학을 통해 자신을 어떻게 변신시켰는지 기록해놓은 '보고서'다. 남산 자락에 자리잡은 인문학연구소 '감이당'의 대중지성 프로그램에 참여하며 써놓은 에세이와 '수유+너머' 등에서 진행된 그리스·로마 세미나를 바탕으로 철학, 공부, 우정, 사랑, 진실에 대한 그의 생각을 풀어냈다. 예전 같으면 술과 담배에 절어있을 그 시간에 친구들과 책을 읽고 글을 쓰며 체화된 이야기들이 우리 시대의 풍경과 어울리며 빛을 낸다.

그런데 왜 자기배려의 인문학일까. '자기배려'라고 하면 흔히 '자기 자신을 돌보기'로 풀이할 수 있다. 그 흔한 힐링이나 자기 계발과 무엇이 다를까 싶지만 지은이는 푸코의 개념으로 자기배려를 설명한다. 그것은 주체의 변형 또는 자기 해체에 가까운 말이다. 푸코는 이를 '단 한 번도 되어 본 적 없는 자기가 되는 실천'으로 정의한다.

이같은 자기배려는 동아시아 사유에서 더 근본적 태도로 나타났던 게 아닐까. 쏟아지는 서구 문물과 고착화된 전통 사이에서 당시 지식인들은 무언중에 자기배려의 방식으로 싸웠다. 루쉰의 '저항', 소세키의 '자기본위'는 푸코의 자기배려와 멀리 떨어져 있지 않다. 이런 태도는 조선의 연암 박지원에게도 발견된다. 연암이 말하는 '사이의 길'이나 '명심'은 자기배려와 닿아있다.

철학을 만난 뒤 삶이 바뀌었다는 지은이는 플라톤, 세네카, 니체, 푸코, 루쉰, 소세키, 연암 등을 '사유의 공동체'라고 불렀다. 그는 그들에게 인문학을 배웠다. 그들은 항상 자기로부터 출발하고, 자기와 세상을 바꾸고, 자기로 되돌아간다. 그래서 그는 그들을 통해 "나를 바꾸지 못하는 공부가 어찌 인문학일 수 있겠는가. 지금 가만히 있으라는 체제와 싸우지 못하는 공부가 어찌 인문학일 수 있겠는가"라고 묻는다. 북드라망. 1만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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