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5년부터 국가정책으로 전통가옥 부흥 운동을 시작해 에도시대 모습을 재현한 가와고에시. 표성준기자
도심지 개발 대신 보존 정책 통해 관광객 유치침체된 내수시장 외국인 관광객 소비로 활성화
최근 제주를 찾는 일본인 관광객이 급감하자 제주도관광협회와 관광업계 종사자들은 지난달 일본시장을 현지 조사하기 위해 도쿄 일원을 방문했다. 이들은 현지 관광자원을 탐방한 결과 일본 관광상품의 경쟁력은 국제 수준의 서비스와 함께 바로 옛것과 새것의 공존에서 그 근원을 찾을 수 있었다고 한 목소리를 냈다.
# 일본의 관광상품
관광협회 방문단은 이번 일정 중 도쿄 북쪽에 인접한 사이타마현(埼玉縣)의 남부에 있는 가와고에시(川越市)를 탐방했다. 가와고에는 에도 시대의 정서가 살아 숨쉬는 전통도시로 고에도(小江戶·작은 에도) 가와고에라 불린다. 에도시대 에도성 북쪽 방어기지였던 가와고에는 정치적·군사적으로 중요한 곳이었으며, 지금도 당시의 풍경을 간직한 전통가옥거리가 남아 있다.
약 300년 전부터 조성된 전통가옥거리는 1893년 큰 화재가 발생해 모두 소실되고 1792년에 지은 딱 한 건물만 남게 됐다. 그러자 상인들은 하나 남은 건물을 모델로 삼아 옛 모습을 그대로 재현했다. 그러나 이 거리는 1945년 태평양전쟁 당시 일본이 패망하면서 다시 망가졌다. 이에 일본 정부와 주민들은 개발 대신 옛 모습을 유지하기로 의견을 모으고 1975년부터 국가정책으로 전통가옥 부흥 운동을 시작해 다시 옛 모습을 재현해냈다. 그리고 이 때 1893년 화재에서 살아남은 유일한 건물을 박물관으로 조성해 개방했다.
이곳 도로 폭은 300년 전과 똑같다. 생활에 불편을 겪지 않느냐는 질문에 현지 관광해설사인 아오키 타카오(靑木隆夫·71)씨는 되레 "주민들의 생활 터전이어서 폭을 넓힐 수 없었다"고 답변했다. 옛것을 지킨 결과 전통가옥거리에는 2013년 630만명의 관광객이 방문한 데 이어 지난해에는 657만명이 찾아왔다. 전통가옥거리를 행진하는 10월의 가와고에축제에는 이틀간 90만명이 방문하기도 했다. 삶의 터전을 지킨 주민들은 시간여행을 즐기려는 국내외 관광객들이 몰리면서 삶의 질을 더욱 높여나가고 있다.
일본 역시 야간관광과 겨울관광에 대한 고민을 해왔다. 그러한 고민 끝에 탄생한 것이 도쿄 도이츠무라 일루미네이션이다. 도이츠무라는 독일마을이라는 뜻으로 굳이 우리와 비교하자면 영어마을 정도로 볼 수 있다. 도쿄 도이츠무라는 약 91만평방미터(약 27만평) 부지에 조성된 테마파크다. 다양한 나무와 꽃으로 화려함을 자랑하지만 꽃이 모두 지는 겨울철 볼거리가 아쉬웠다. 그래서 겨울철인 11월 8일부터 이듬해 3월 31일까지 야간시간에는 형형색색의 조명을 이용한 일루미네이션을 설치했다.
어둠 속에서 흥겨운 음악에 맞춰 화려한 조명이 춤을 추는 장면은 관광객들의 탄성을 자아낸다. 남녀노소 모두 넋을 놓고 바라보다 놓칠세라 카메라를 들이대는 장면은 야간관광상품으로서의 일루미네이션의 진가를 보여준다. 관동지방 3대 일루미네이션 중 한 곳인 이곳에는 연간 100만명이 방문하며, 이 가운데 약 50만명이 일루미네이션 기간에 찾아온다.
겨울철 관광활성화를 위해 만들어진 도이츠무라 일루미네이션.
# 일본의 면세점 정책
일본은 2020년 올림픽·장애인올림픽 도쿄 대회 개최국 지위를 활용해 2020년 방일 외국인 여행자 수 2000만명을 목표로 설정했다. 인구가 감소하고 소비세가 인상되는데다 오랜 경기 침체 탓에 극도로 위축된 내수시장을 살리기 위해 외국인 관광객을 유치하겠다는 것이다. 이를 위한 정책 가운데 눈여겨볼 만한 대목이 바로 쇼핑관광을 진흥시키기 위한 면세점 확대 방안이다.
일본에는 지난해 4월 5777개이던 면세점(Tax free)이 지난해 10월 기준 9300여개로 증가했다. 이는 그동안 면세점 품목은 전자제품에 한정했지만 지난해 10월부터 식료품과 의료품, 화장품, 술 등 모든 품목을 면세 대상에 포함시켰기 때문이다. 일본 정부는 당초 2020년까지 전국 각지의 면세점을 1만개 규모로 늘릴 계획이었지만 전품목 면세 대상 지정을 계기로 올해 4월에 이미 1만개가 돌파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특히 일본의 면세점 정책이 우리와 다른 점은 대기업이 운영하는 일부 시내면세점이 그 과실을 독차지하는 것이 아니라 지역 상권에까지 파급력이 미친다는 점이다. 일본 국토교통성 관광청의 이마이 준스케 과장은 "일본의 택스프리 면세점은 외국인 소비자에게 소비세 8%를 면제해주는 것인데, 면세점을 확대하다 보니 중국인이 급증하고 있다"며 "소규모 면세점은 신청 절차가 까다로웠지만 제도 개혁을 통해 모든 가게가 신청할 수 있게 됐다"고 설명했다.
일본의 면세점 정책에는 백화점·대량 판매점·아울렛 쇼핑센터 등의 유통·부동산 업계와 결제기능을 담당하는 금융·신용 판매회사, 지역 상공회의소, 상공회 등의 경제단체, 관광청, 경제산업성 등 관계 행정기관이 연계해 추진하고 있다. 일본에서의 쇼핑 매력을 높이고 쇼핑 대국으로서의 브랜드 구축을 도모함과 동시에 그 효과를 지역에 파급시키는 방안을 모색한 결과다.
日 관광청 이마이 준스케 과장 "LCC 활용 저가상품 개발해야"
원고엔저로 한일 쇼핑가격 동등저렴한 비용의 여행지 고정관념LCC·마트·B급 음식으로 구성을
일본 정부 관계자 역시 한국과 제주도를 찾는 일본인 관광객이 급감하는 이유로 '원고엔저' 현상을 꼽았다. 그리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과거 LCC(저비용항공사)와 B급 음식을 활용한 저가상품을 개발해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원고엔저가 장기화되면서 제주를 찾는 관광객이 급감해 2014년에는 9만6519명으로 2013년 12만8879명보다 25.1% 감소했다. 반면 일본을 찾는 한국인 관광객은 꾸준히 증가해 2014년 일본 방문 외국 관광객 1341만명 중 한국인은 275만명으로 1위를 차지했으며, 대만과 중국이 뒤를 이었다.
일본 국토교통성 관광청의 이마이 준스케(사진) 과장은 "한국과 제주를 찾는 일본인 관광객이 감소한 가장 큰 원인은 원고엔저로 한국과 일본의 쇼핑 가격이 비슷해졌기 때문"이라며 "환율은 고정되는 것이 아니므로 언제든지 다시 역전될 수 있지만 단시간에 해결하기는 어렵기 때문에 상호 협력과 교류 등 장기적인 안목을 통해서 대책을 준비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마이 과장은 또 개인 의견을 전제로 "원고엔저 시대이지만 여전히 한국에 가려는 사람은 있다"며 "다만 일본인들 사이에서는 고가의 상품을 즐기려는 사람은 극소수이고, 한국은 여전히 저렴한 비용의 여행지라는 고정관념이 있다"고 설명했다.
이마이 과장은 이어 "LCC를 이용하고 면세점 대신 마트, 고급 음식점 대신 B급 음식을 취급하는 레스토랑 등으로 저렴한 여행상품을 구성할 필요가 있다"며 "일본은 항공사가 독자적 전략에 따라 일본과 외국 간 노선이 없는 나라·도시에 노선을 신규 개설할 것을 촉구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LCC 진출을 촉진하기 위해 공항 터미널을 재정비하고 있다"고 강조해 한국과는 사뭇 다른 항공 정책을 펼치고 있음을 알려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