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로 밥먹엉 살아졈수광?](2)고순철 서양화가

[예술로 밥먹엉 살아졈수광?](2)고순철 서양화가
미술대학 갓 졸업한 작가들 알릴 수 있는 마당 없나
  • 입력 : 2017. 05.18(목) 00:00
  • 고순철 hl@ihalla.com
  • 글자크기
  • 글자크기

한라산 등 제주를 화폭에 담고 있는 서양화가 고순철씨. 사진=고순철씨 제공

[문화예술의 섬 제주에 묻다]
작업 지속위한 방편으로 미술학원 운영한지 20년

제주작가들 DB 구축하면 홍보 창구 활용 가능할 것

젊은 작가가 물었다. 작품을 제작해도 소비되지 않는 현실을 어떻게 헤쳐가야 하느냐고. 그는 작품 판매를 위한 마케팅을 배우고 싶다고 했다. 창작과 유통이 따로 노는 이 땅의 장벽을 작가 스스로 뛰어넘겠다는 거였다.

지난 12일 제주시 원도심 문화공간'풍류'에서 열린 청년포럼. UCLG(세계지방정부연합) 세계문화정상회의 세션의 하나로 마련된 청년포럼에서는 먼 나라 이야기가 아닌 지금, 여기 청년작가의 처지가 그대로 드러났다.

서귀포를 기반으로 활동해온 고순철 작가는 그런 후배들을 위해 제주 미술인을 알릴 수 있는 판을 마련해주자고 제언했다. 주목받지 못하는 생을 살고 있는 젊은 작가들의 작품을 구매자들에게 내보일 수 있는 창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어느 작가가 어떤 활동을 펼치고 있는지 기초 자료부터 구축하자고 했다.

제주도가 2015년 12월 펴낸 '창작여건 개선을 위한 문화생태지도 구축사업 보고서'를 보면 시각예술분야 예술인들은 창작물 유통 부족을 어려움 중 하나로 꼽았다. 제주로 이주한 작가에 비해 제주출신 작가들의 응답률이 3배 가량 높았다.

진선희 기자 sunny@ihalla.com



몇달 전 서울 한복판에 명문 미술대학 출신이 목공예 공장을 차리고 필로폰 500g을 만들었다는 뉴스를 접했다. 16억원어치로 1만6000명에 투약할 수 있는 양이라고 했다. 이것은 일부 미대생이 저지른 일인지 모르나 우리 시대의 자화상을 보여주는 것 같아 슬프고 안타까웠다. 경제적으로 불안정한 순수미술 전공자들에겐 남의 이야기가 아닐 것이다.

미대를 졸업하고 순수 창작의 길을 걷는 사람들은 몇이나 될까. 나 역시 미대로 진학하면 좋아하는 일을 즐기면서 할 수 있고 전업작가로 활동하리란 마음이 컸다. 하지만 막상 대학을 졸업하고 나니 막막해졌다.

그래서 시작한 일이 미술학원 운영이다. 그림을 마음껏 그리면서 재능을 활용해 학생들을 가르칠 수 있는 보람이 있는데다 경제적인 문제도 해결할 수 있는 묘안이라고 여겼다. 운영에 필요한 기본자금은 어쩔 수 없이 부모님의 도움을 받았다.

미술학원을 운영한지 어느덧 20년이 흘렀지만 '밥은 먹고 살아지긴 햄신디'라는 말이 쉽게 나오지 않는다. 작업을 하기 위한 하나의 방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임대한 작업 공간비, 재료비 등을 마련하려면 학원 운영에 나설 수 밖에 없었다. 2007년부터 2014년까지는 공공미술 사업에 참여했다. 주위에서는 이런 나를 보고 잘 나가는 것 같다고 말했다. 경제적으로 많은 혜택을 누리는 걸로 알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같은 프로젝트 사업으론 먹고 살기 어려웠다. 시간을 빼앗기는 재능기부 공공근로였다.

제주도에서 미대를 졸업한 뒤 육지 대학원에 진학하는 후배들이 많아지고 개인전을 통해 자기의 작품 세계를 알리는 기회가 늘고 있다. 하지만 일부의 이야기다.

도내에선 미대를 졸업하고 작품만 해서 살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어 있지 않다. 개인전 등을 통해 작품 판매가 이루어지는 정도이고 건축장식물만 해도 배정 예산이 적고 참여 작가도 몇몇에 치우쳐 있다. 젊은 작가들은 전문성이 결여되어 있다는 이유로 배제되는 사례가 많다.

대학을 이제 막 졸업한 젊은 작가들이 자신을 알릴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줘야 한다. 도내 작가와 젊은 작가 작품을 모은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해 누구든 공유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해주면 어떨까. 미술관이나 갤러리에서 젊고 역량 있는 작가를 발굴하는 기회가 되고 작가들간 교류의 장으로 활용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를 정부나 지자체에서 운영하는 미술은행 방식과 연계할 경우엔 기업·공공기관 등에 작품 매입이나 대여를 위한 기초 자료로 제공할 수도 있다. 지금은 미완이지만 가능성이 더 많이 남아있는 미대생들의 작품을 구입하거나 대여하는 방법도 적극적으로 고려할 필요가 있겠다.

오늘도 미술대학을 졸업하고 가야할 길을 찾지 못해 헤매는 이들이 있다. 역량 있는 젊은 작가들을 육성하는 일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앞날이 안보이는 듯한 미대생들에게 자그만 희망의 빛을 비쳐주었으면 한다.

<고순철·서양화가>
  • 글자크기
  • 글자크기
  • 홈
  • 메일
  • 스크랩
  • 프린트
  • 리스트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스토리
  • 밴드
기사에 대한 독자 의견 (0 개)
이         름 이   메   일
1595 왼쪽숫자 입력(스팸체크) 비밀번호 삭제시 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