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로 밥먹엉 살아졈수광?](6)문재웅 영화감독

[예술로 밥먹엉 살아졈수광?](6)문재웅 영화감독
이탈리아 메디치 가문 같은 '제주 효과'를 기대하며
  • 입력 : 2017. 07.13(목) 00:00
  • 문재웅 hl@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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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칸영화제 단편영화 부문에 진출했던 문재웅 감독이 칸 영화제 레드카펫을 밟으며 잠시 포즈를 취했다. 사진=문재웅씨 제공

[문화예술의 섬 제주에 묻다]
끼리끼리 만나는 제주 예술가…단절 말고 소통할 살롱은 어디

메디치 대가 없이 예술가 지원…제주도 적절한 지원과 인내를

○…영화 제작 환경이 열악한 제주에서 그 역시 친구들을 불러모아 '맨 땅에 헤딩'하듯 작품을 만들어왔다. 그러다 제주영상위원회의 영화제작 교육, 해외 교류 프로그램, 장비 지원 등을 받으며 차츰 시야를 넓혀갔다.

습작을 포함하면 네번째 작품이었다. 몇 차례의 실패와 한계를 경험하며 거둔 성과다. 그 혼자 바둥거렸으면 기회가 더 늦게 찾아왔을지 모른다.

제주를 배경으로 촬영한 단편영화 '포구'로 올해 칸영화제에 초청받았던 문재웅 감독 이야기다. 대학에 영화학과 하나 없는 제주에서 차근차근 실력을 키우며 영화를 제작했고 스물 아홉의 나이에 생애 처음 해외 영화제에 진출했다.

칸영화제 기간에 현지로 떠났던 문 감독은 비용과 시간을 투자해 현장을 누볐다. 칸으로 향하기 전, 각국에서 모여든 여러 영화인들을 만나며 성장할 수 있는 계기를 삼고 싶다고 말했던 그다. 제법 길었던 여정을 마치고 돌아온 그는 지원은 아끼지 말되 인내심있게 기다려주는 문화행정을 기대한다고 했다. 봉오리도 안맺혔는데 꽃을 피우지 않았다며 지역 예술인들의 싹을 자르는 일은 없어야 한다는 간곡한 바람이었다. …○

진선희 기자 sunny@ihalla.com



영화감독이 되겠다고 18살부터 단편영화를 찍으면서 배가 고프다고 생각했던 적은 없다. 조금만 부지런하다면 밥 굶고 다닐 이유가 없다. 반면, 한 가정의 가장이 되어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한다면 상황은 달라진다. 그러나 이러한 불편함은 창작의 즐거움을 선택하고 보편적 경제활동을 포기한 대가이고 책임이라고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제주도, 섬의 지역적 특성이 주는 불편함은 있다. 바로 '단절'이다. 사람이 없어 단절된 것이 아니라, 사람이 있지만 생겨난 단절이다. 육지와 해외에서 제주도의 매력에 이끌려 온 예술가들, 제주도에 터전을 두고 있는 예술가들 다수가 서로를 모른다. 매번 만나는 사람끼리 만난다. 이건 큰 문제다. 창작은 사람 간 다양한 생각과 가치관이 교류될수록 풍성해진다고 본다. 프랑스 파리에서 많은 예술가가 탄생할 수 있었던 이유는 '살롱문화'에 있다고 생각한다.

예술가들이 고민하고 토론하고 소통할 공간이 제주도엔 없다. 언제든 가벼운 마음으로 놀러 가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작품에 대해 대화할 열린 공간이 필요하다. 정치, 경제, 철학, 문학, 예술 등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이 모여 소통할 수 있었던 살롱처럼 말이다. 제주도엔 살롱을 위해 사적 공간을 공적 공간으로 열어줄 프랑스 귀족 같은 이가 아직은 없다. 그렇다면 도정에 도움을 요청할 수밖에.

르네상스 발상지인 이탈리아 피렌체에는 메디치 가문이 있다. 서로 다른 것이 모여 혁신을 만든다는 의미를 가진 '메디치 효과(Medici effect)'는 메디치 가문에서 유래했다. 지금까지도 존경받는 메디치 가문은 15~16세기 예술가, 과학자, 상인, 철학자를 대가 없이 전폭적으로 지원했다. 그 결과 레오나르도 다빈치, 미켈란젤로, 단테, 마키아벨리 같은 이들을 줄줄이 탄생시킬 수 있었다. 최근 경제적 논리로만 접근해 시시각각 빠른 성과를 내지 않는 분야에 대한 지원을 거두는 일이 사회 전반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구멍 뚫린 항아리에 물 붓는 심정으로 예술계를 바라보고 있으니 유능한 재능을 가진 예술가들이 꽃을 피우기 전에 말라버리는 사례를 자주 본다.

나는 운이 좋은 편이다. 2016년 제주영상위원회에서 영화 제작지원금을 받고 작품활동을 할 수 있었고, 덕분에 칸 영화제에 진출할 수 있었다. 영화제에 가는 경비도 일부 지원해줘 더 깊게 보고 느끼고 배울 기회를 얻었다. 보통, 예술가는 혼자만의 안위를 생각하지 않는다. 자신이 속한 공동체, 인류를 위해 봉사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다. 이들에게 작품 활동을 자유롭게 할 수 있는 공간과 작품 활동에 필요한 경비를 지원하고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려준다면 분명 지역과 국가, 인류를 위해 보답할 거라 믿는다. 적절한 지원이 있다면, 창작자가 온전히 작품활동에 전념할 수 있다. 우리 제주도 또한, 메디치 효과를 넘는 '제주 효과(Jeju effect)'라는 신조어를 만들 수 있다고 믿는다.

<문재웅·영화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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