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으로 읽는 제주예술사](12)1지자체 1문예회관 위상 어디로

[공간으로 읽는 제주예술사](12)1지자체 1문예회관 위상 어디로
밀물같던 공연… 기획력 부재에 썰물같은 관객
  • 입력 : 2017. 09.26(화) 00:00
  • 진선희 기자 sunny@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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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간에 바라본 제주도문예회관 전경. 30년을 달려왔지만 제주 대표 공연장의 위상은 허약해지고 있다. /사진=제주도문화예술진흥원 제공

대극장 가동되며 백건우 첫 내한 공연 등 굵직한 무대
자체 색깔 드러내는 무대 없고 대관 공연 의존도 높아
기획인력 투입 등 시대변화 맞춘 관객지향형 운영 필요

1980년대부터 문화수요 충족을 위해 '1지자체당 1문예회관'이란 목표를 두고 전국 곳곳에 들어선 문예회관. 제주는 그 기회를 비교적 빨리 잡았다. 1988년 8월 25일 제주도문예회관 개관 이래 당시 기준으로 920석 규모의 대극장으로 공연이 밀물처럼 밀려들었다.

1990년 한햇동안 문예회관을 이용한 공연팀은 개인을 합쳐 176곳에 이른다. 이들은 228일 동안 연극, 무용, 음악 등 319회 공연을 펼쳤다. 이는 개관 이듬해 문예회관 가동일수 156일에 비해 증가한 수치다. 제주시민회관, 서귀포시민회관 정도를 빼면 제주에 중·대형 공연이 가능한 시설이 없던 때였다. 문예회관으로 공연이 집중될 수 밖에 없었다.

▶관리 기구 제주도문화진흥원 명칭만 거창=대극장과 소극장, 전시실을 갖춘 문예회관은 오랜 기간 '독주 체제'로 운영해왔다. 도립 공간으로 접근성도 좋아 이용률이 높았다. 2007년 이용실적 집계 현황을 보면 그 해 241일 동안 대극장 문을 열어뒀다. 대극장이 생기면서 국내 굵직한 공연이 제주 무대에 오를 수 있었고 제주지역 공연 단체들도 음향·조명 장비가 상대적으로 우수한 대극장을 선호했다.

개관 1년새 독일 칼스루헤 발레단, KBS교향악단, 국립발레단의 '호두까기 인형', 국립창극단 '춘풍전', 피아니스트 백건우, 극단 황토의 '오장군의 발톱', 국립무용단의 '하얀 초상', 88서울예술단의 창작뮤지컬 '아리랑 아리랑' 등이 대극장을 찾았다. 피아니스트 백건우는 1989년 7월 문예회관 독주회를 통해 처음 제주 청중들과 만나는 등 공연장 시설이 구비되면서 초청 무대도 자연스레 늘어갔다.

1주년 맞이 공연도 다채로웠다. 제주민속예술단, 극단 이어도, 제주시립합창단, 국립극단 등이 출연해 8월 25일부터 9월초까지 개관 기념일을 축하하는 무대를 잇따라 선보였다.

문예회관 대극장 무대를 채웠던 여러 빛깔의 공연들. 현재 문예회관은 기획보다는 대관 공연으로 채워지는 무대가 대부분이다. 사진=한라일보 DB

하지만 대관 위주의 공간 운영은 이내 한계를 드러냈다. 서울에서 이름난 단체의 공연은 자체 기획력보다는 민간이나 방송사에서 불러온 무대인 경우가 많았다.

이는 문예회관을 운영하는 제주도문화진흥원이 거창한 명칭을 갖고 있는데도 시설 관리 업무를 벗어나지 못했던 현실을 그대로 보여준다. 소극적 문화행정으로 일관하며 달라지는 문화예술계 분위기를 못따라간 사례도 있다.

10여년 전까지 새벽 줄서기를 만들었던 대관 방식이 대표적이다. 제주도문화진흥원이 운영하는 제주도립무용단 연습·정기공연 날짜를 선점해놓고 이를 제대로 알리지 않은 채 선착순 대관 접수를 받은 일이 있다. 결국 현장에 있던 20여개 문화예술단체가 대관 방식 변경을 요구하는 민원을 제기했고 1년후 쯤 개선이 이루어졌다.

▶외적 성장했지만 문예회관 전문성은 '글쎄'=문예회관 기획 공연의 부재는 오래된 이야기다. 10주년이던 1998년 그 날의 문예회관으로 돌아가 보자. 개관 기념일을 전후한 날짜는 물론이고 1월부터 12월까지 10주년을 새겨보는 무대를 찾아볼 수 없다. 대신 그 해 8월 25~26일 문예회관에선 좋은 영화 상영회가 진행됐다. 같은 해 열린 세계섬문화축제로 시선이 쏠렸던 시기라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열돌을 맞아 문예회관의 현재를 들여다보고 앞날을 그려보는 흔한 축하 무대 하나 기획되지 않았다.

20주년이던 2008년은 제주도문화진흥본부로 격상하는 해였지만 이 때도 문예회관 운영에 큰 변화가 없었다. 업무 분장은 그대로 인채 조직 덩치만 키웠다.

문예회관 대관 업무만 집중해도 공간이 가동된다는 생각 때문일까. 제주에서 가장 먼저 생겨난 문예회관인데도 제주아트센터, 서귀포 예술의전당 등 다른 공립 공연장과 달리 기획 인력 배치에 손을 놓고 있다. 대극장 문턱을 밟는 제주도민들이 늘어나고 무대가 최신 시설로 꾸준히 바뀌어왔지만 종전처럼 문예회관을 '대표 공연장'으로 선뜻 꼽기 어렵다. 문예회관이 성장해온 만큼 그들만의 색깔을 그려내는 기획 공연이 드문 탓이다.

문예회관은 그동안 관객지향형 공간 운영에 소홀했다. 1990년부터 가동된 소극장만 해도 쓸모있는 공연장이 되려면 무대와 객석 등 시설 내부를 고쳐야 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지만 근래들어서야 손을 봤다. 야외공연이 가능한 놀이마당은 주차장으로 바뀌었다.

제주 공연장 가동률 최고…자체 레퍼토리 비율 꼴찌

제주 지역 문예회관 운영 방식은 '후진성'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공연장 가동률은 다른 지역보다 앞서지만 레퍼토리 프로그램 등 자체 기획 비율은 낮다.

한국문화예술회관연합회가 제주 3곳(제주도문예회관, 제주아트센터, 서귀포 예술의전당)을 포함 전국 229개 문예회관을 대상으로 실시한 '2016 전국 문화예술회관 운영현황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공연장 가동률은 제주가 99.1%로 가장 높았다. 전체 평균 53.7%를 크게 앞지르는 수치다.

하지만 기획공연 현황에 이르면 상황이 달라진다. 기획공연건수 평균 11.7건, 공연일수 18일, 공연횟수 22.3일로 전국 평균 기획공연건수 14.4건, 공연일수 24일, 공연횟수 30.1일을 밑돈다. 대신 대관공연 평균 실적은 공연건수 94.3일, 공연일수 102.2일, 공연횟수 139.4일로 전국에서 가장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사진=한라일보 DB

시즌제나 레퍼토리 운영도 전무한 실정이다. 시즌제는 음악회, 연극, 오페라, 발레 등 공연을 일정 기간 동안 집중 편성하고 관객에게 사전 공지해서 프로그램을 미리 선택하게 하는 제도를 말한다. 레퍼토리는 문예회관이 자체 기획하거나 주관하는 프로그램으로 특정 타이틀을 가지고 주기적으로 이루어지는 공연을 일컫는다. 이번 조사 결과 시즌제를 운영하는 제주지역 문예회관은 없었다. 레퍼토리를 운영하고 있다는 응답률 역시 '제로'를 보였다.

담당업무별 인력 현황에서는 행정(경영) 지원 인력 11.2명, 무대기술 인력 6.2명으로 전국 평균을 웃돌았다. 반면 공연 기획부터 공연장 관리를 위한 인력까지 포함하는 공연사업 인력은 5.4명으로 전국 평균에 못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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