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세상]한라산까지 다다랐던 시적 영토를 따라

[책세상]한라산까지 다다랐던 시적 영토를 따라
고명철 등 공저 '신동엽 문학기행…'
  • 입력 : 2020. 09.18(금) 00:00
  • 진선희 기자 sunny@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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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여·서울시대와 제주도
아시아의 대지적 상상력

'그는 추모되는 기억이 아니라 살아 격돌하는 현재이다.' 온라인 신동엽문학관의 문을 열면 이런 글귀가 방문객들을 맞는다. '껍데기는 가라'고 했던 신동엽 시인(1930~1969) 탄생 90주년을 맞아 제주까지 닿았던 그의 자취를 담은 책이 묶였다. 신동엽학회 아카이브로 발간된 '신동엽 문학기행-이 세상에 나온 것들의 고향을 생각했다'이다.

11명의 필진은 신동엽의 삶과 문학을 좇아 부여, 서울, 제주로 향했다. 서사시 '금강'이 탄생한 시인의 고향 부여에서는 생가, 낙화암, 백마강가 등을 찾았다. 서울은 신동엽이 남편이자 아버지, 선생님으로 살았던 공간이었다.

제주 편은 시인이 1964년 한여름 나섰던 여행길에서 기록한 열흘 분량의 일기를 출발점으로 삼아 광운대 교수로 재직하는 제주 출신 고명철 평론가가 집필을 맡았다. 시인은 7월 30일 목포에 도착해 1박을 하고 뱃길을 이용해 이튿날 밤 제주에 도착했다. 제주 여행은 8월 1일부터 8월 7일 오전 10시 제주항을 떠날 때까지 이루어졌다.

이 시기 신동엽 시인은 삼성혈과 오현단, 관덕정 등을 돌아봤고 관음사 코스로 백록담에 올랐다. 시인은 관덕정에서 "산(山)사람 우두머리 정(鄭)이라는 사나이의 처형이 대낮 시민이 보는 앞에서 집행되었다고. 그리고 그 머리는 사흘인가를 그 앞에 매달아 두었었다 한다"며 제주인들이 주둔군에 의해 비참한 굴욕과 죽임을 당한 일을 덧붙였다. 태풍이 잦아들길 기다려 마침내 다다른 한라산 정상에선 "안개속에 가물대는 발밑의 천인단애"를 본다.

고명철 평론가는 시인이 '기어코' 한라산 등반을 시도한 걸 두고 "아시아의 대지에서 발원한 지맥/산맥이 한반도로 내달렸고, 바다 밑을 통해 해저의 화산활동으로 한라산으로 솟구쳤듯, 아시아의 대지를 거쳐 백두에서 한라까지 한반도 전역을 그의 시적 영토로 다루고자 하는 것과 분리시켜 생각할 수 없다"고 의미를 뒀다. 고 평론가는 "한라산의 등반 과정에서 신동엽은 이러한 지맥과 산맥의 융기를 관념적 사유 대상으로 간주하지 않고, 자신이 직접 온몸을 통해 체험하고 있다는 점에서 제주 기행은 아시아의 대지와 연관된 심상지리로서 신동엽 문학을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한 부분"이라고 했다. 소명출판. 1만9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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