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건의 문화광장] 건축가들의 수상한 전시회

[양건의 문화광장] 건축가들의 수상한 전시회
  • 입력 : 2021. 01.05(화) 00:00
  • 강민성 기자 kms6510@ihalla.com
  • 글자크기
  • 글자크기
전 세계를 팬데믹 상황에 빠트린 코로나19의 한 해가 저물고, 2021년의 희망찬 새해가 시작됐다. 여전히 시간은 흘러가지만, 매번 반복되는 마무리와 시작은 지쳐있는 우리에게 새로움이란 위안으로 다가온다. 지난 한 해를 돌아보면 '사회적 거리두기'라는 방역 조치로 인해 우리의 일상이 무너져 내린 지 오래다. 이러한 비상상황은 언택트 시대의 '랜선 일상'이라는 새로운 삶의 방식을 출현시켰다. 디지털 스마트 기기를 통한 전시와 공연 관람이 우리의 바뀐 일상이 돼버린 것이다. 이처럼 허상의 이미지를 매개로 한 전시와 공연의 제한적인 감상에 우리 모두가 아쉬움을 갖는다. 다만 문화적 행위와 대중과의 교감은 문화예술의 생명성이기에, 어쩔 수 없이 시대 상황에 맞는 문화적 소통 방식에 수긍하게 된다. 그만큼 문화예술은 대중과의 공감이 소중하다.

문화예술로서 건축은 타 분야보다도 사회 현상에 더욱 민감하다. 그런데 실체적 작업이 도시 곳곳에 실현된 건축의 특성 때문인지, 건축가들은 전시를 통한 대중 다가서기에 익숙하지 않았다. 더불어 일반 시민들도 건축을 미술관에서 관람하는 것이 낯설었다. 일례로 2008년 저지 현대미술관에 해외 유명 건축가 초청 전시를 기획했는데, 미술관 측에서 대관에 난색을 표했을 만큼 일반적이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격세지감이다! 그 10년 후엔 '2018 대한민국 건축문화제'가 제주도립미술관에서 개최되고, 문예회관에서는 매해 '제주건축가회의 회원전'이 열리면서 제주 사회에도 건축전시가 보편화됐다. 그런데 건축전시를 보면 형식과 내용 면에서 조금 의아한 면이 있다. 작가 개인의 작업과 철학을 대중에 소개해 문화 소비의 대상으로 광고하거나, 작품을 판매하려는 전시의 일반적인 목적과는 판이하다. 대개의 건축전시는 동시대의 도시조직과 건축양상을 해부하고 진단하여 그 치유대안을 모색하는, 윤리적이며 건강한 문화행위로써의 작업을 내놓는다. 건축가 개인에게는 실질적인 대가가 전혀 없는 수상한 전시회를 연다는 것이다.

지난 연말 이런 전시가 제주 시내에서도 열렸다. 제주 도시재생 지원센터의 후원으로 제주의 젊은 건축가 5인(권정우, 양현준, 오정헌, 백승헌, 이창규)에 의해 기획된 ‘제주 원도심 미래 풍경 상상전’이다. 권정우는 관덕로 지하상가의 미래 활용을 제안했고, 양현준은 탑동을 부분 복원해 제주 시민의 기억을 소환하는 작업을, 오정헌은 구오현고 운동장을 활용해 지역 생태계를 활성화하는 제안을 내놨다. 또한, 이창규는 산지천의 녹지축을 드러내 세로축의 도시조직을 개선하는 가능성을 도모하고, 백승헌은 제주성굽 도로와 그 주변을 다루는 입체도시의 조직을 제안했다. 5인의 건축가는 원도심의 잠재성을 찾아내 각자의 대안과 방식으로 제주도민에게 다가선다. 그것으로 문화적 행위의 생명성을 위한 소임은 충분했다.

그런데 이러한 전시회에서 5인의 건축가는 개인적으로 무엇을 얻었을까? 아마도 그들은 동시대 제주에서 활동하는 건축가로서 ‘실존적 주체’를 경험했을 것이다. 이는 놓기 힘든 중독성의 성찰적 체험이다. 그래서 팬데믹보다 더한 세상이 올지라도 건축가들의 수상한 전시회는 계속될 것이다. <양건 건축학 박사.제주 공공건축가>
  • 글자크기
  • 글자크기
  • 홈
  • 메일
  • 스크랩
  • 프린트
  • 리스트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스토리
  • 밴드
기사에 대한 독자 의견 (0 개)
이         름 이   메   일
8001 왼쪽숫자 입력(스팸체크) 비밀번호 삭제시 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