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세상] 온몸으로 살아 내는 언어에서 찾는 내일

[책세상] 온몸으로 살아 내는 언어에서 찾는 내일
김수열 시인의 산문집 '달보다 먼 곳'
  • 입력 : 2021. 03.19(금) 00:00
  • 진선희기자 sunny@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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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시를 키운 건 8할이 무근성이 아닐까. 시인은 구불구불 원도심 골목을 떠올리고, 집어등을 수평선의 별들로 생각했던 소년기를 기억한다. "수평선에 가물가물 떠 있는 별들이 언제면 하늘로 오를까 하고 지켜보던 그때 그 마음을 지우고 싶지 않다"는 김수열 시인이 여러 지면에 발표한 원고와 대담을 모아 산문집 '달보다 먼 곳'을 냈다.

'물에서 온 편지' 등 독자들에게 회자되는 시집을 출간했던 그는 산문 쓰기가 적잖이 부담스럽다고 했다. 시인은 청탁을 받아 그 시기에 그것을 쓸 수 밖에 없었던 제주의 상황이 오늘도 달라지지 않았다고 여겨 지난 글들을 묶었다.

30편가량의 산문은 중등교사, 시인을 넘어 제주민예총 이사장 등을 맡으며 제주 문화예술운동 현장을 누벼 온 그의 여정을 드러낸다. 육지의 마당극과는 결이 다른 제주굿의 이론적 토대 위에 탄생한 제주 마당굿의 역사를 극단 수눌음, 놀이패 한라산의 어제와 오늘로 풀어냈고, 4·3문학과 예술활동의 당위성이 지금의 강정, 성산으로 이어지고 있다고 했다. 그의 시에 이야기가 있고, 등장인물의 심리가 시적 화자로 들어가는 등 대부분 서사가 있는 건 마당극을 함께해서 그럴 거라는 시인의 육성도 들어 있다.

강정 해군기지, 제2공항, 대정 송악산 개발, 선흘 동물테마파크 등 제주가 더 망가진 채 황량해지고 있다는 시인이 문득문득 무근성과 탑동 등 유년의 장소를 불러내는 데는 제주의 역사와 삶, 문학이 그곳에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모르는 언어가 눈에 띄면 국어사전에 기댔던 시인은 문학에 뜻을 두고 제주의 속살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면서 조금씩 어머니의 언어가 귀에 들어왔고, 그 언어는 땀흘리는 생의 밭에서 길어 올려진 것임을 알았다. 교과서에 배운 언어로는 도무지 그 깊이와 너비를 헤아릴 수도 담아낼 수도 없었다는 시인은 그래서 온몸으로 살아 내는 이 땅의 사람들이 사는 곳으로 길을 나선다. 삶창. 1만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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