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의 물이야기 물의도시 서귀포] (6)정방폭포 상류엔 무슨 일이(하)

[제주의 물이야기 물의도시 서귀포] (6)정방폭포 상류엔 무슨 일이(하)
"여름에 많이 나던 산지물… 겨울엔 친정 가버려 잘 안나"
  • 입력 : 2022. 08.22(월) 00:00
  • 최다훈 기자 orca@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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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연구원 수자원센터 구술채록
하천변 물 이용 원로 증언 생생
각종 개발로 용출량 줄어 아쉬움

제주연구원이 2019년 초에 펴낸 '서귀포 물 이야기 1'편에는 동홍천과 연외천에 얽힌 마을 원로들의 구술 채록 내용이 실려 있다. 동홍동과 서홍동, 호근동 주민들의 증언이다. 제주연구원은 책 표지에 "한 사람이 태어나서 살아가는 동안 사용했던 물에 대한 경험과 기억 이야기"라고 소개하고 있다. 그 내용이 매우 흥미롭다. 동홍천 편에는 산지물과 고망물, 통물, 가시머리물 등 마을 용천수에 대한 주민들의 생생한 육성 증언이 담겨 있다. 이 증언을 듣노라면 동홍 지역은 곧 물의 역사다. 그 내용을 간추린다.

동홍천 상류에 위치한 가시머리물. 강경민 사진작가



#구술 1

"동홍동은 산지물도 먹고 가시머리물도 먹었어요. 산지물은 겨울에 비가 좀 적게 내리면 물이 많이 솟지 않지만, 가시머리물은 사철 물이 나고 1급수지요. 산지물은 옛날 동홍동 주민들이 여기에서 살면서 이 물을 음용수로 먹었고, 겨울에는 조금 멀리 가시머리까지 가는 사람들이 있었어요. 겨울에 산지물이 적어지면 보통 통물을 마셨어요. 통물은 가시머리물 쪽에서 흘러나온 물이지요. 가시머리에서 흘러내리는 물이 자그마한 개천을 이루는데 거기에서 물을 한 쪽으로 가둬서 그 물을 먹었어요. 그리고 저 쪽 아랫마을 주민들은 고망물을 먹었어요. 하지만 지금은 없어졌어요. 여름에 장마철이 되면 아래 쪽 고망물, 더 밑에는 지금 시민회관 쪽에 있는 구명물에서 물이 엄청나게 넘쳐나요. 물이 솟는 구멍을 구명이라고 해요. 그 물들이 정방폭포 상류, 하천 쪽으로 엄청 쏟아졌는데 지금은 다 없어져 버렸어요. 이 물이 소방서로 돌아서 나갔는데 그 물을 이제 복원한다고 하는데…"

#구술 2

"가시머리물 근처는 예전에는 전부 논이었어요. 한쪽에 흙으로 둑을 쌓아가지고 거기서 흘러나오는 물을 밭쪽으로 흘러가도록 만들어 그 물을 받아 먹기도 했어요. 가시머리물 옆에 있는 밭은 물로 가득 차 있었어요. 그 곳은 늪처럼 물이 들어서 농사를 못 지었어요. 그렇게 물이 사시사철 났어요.(중략) 물통을 만들어 두면 물이 넘치고, 물이 더 앞으로 넘치지 않게 둑을 만들어 놓으면 물이 항상 고여 있었지요. 우리는 그걸 '흐렁 논'이라고 불렀어요.(중략) 흐렁논 물길이 산지물까지 이어져요. 그 밑으로 고망물이라고 하는 곳이 있고, 그 하류는 정방폭포까지 연결되요.(중략) 동홍동은 물이 많이 나서 물 때문에 싸우거나 큰 고난은 없었어요."

가시머리물 주변에는 지장샘이 있다.



#구술 3

"동홍동에서 나고 자랐어요. 동홍동은 예전부터 물이 많이 났어요. 우리는 산지물을 먹었는데 물이 참 많이 났지요. 여름이면 맑은 물이 송송송 솟아났는데, 여러 곳에서 났어요.(중략) 산지물 건너편으로 통물이라고 있었어요. 그 물이 가시머리물에서 내려오는 물이예요. 통물 옆에는 '논골새'라는 물통이 하나 있어요. 논 사이로 수로를 만들었는데, 그걸 논골이라고 불렀어요. 그 논골에 흐르는 물을 먹었는데, 왕대나무를 수로 끝까지 연결해서 물이 흐르게 했어요."



#구술 4

"예전에는 장마철이 오면 삼사방에 물구멍이 터지면서 물이 계속 나왔어요. 어릴 적 천둥같은 소리가 들려오면 사람들이 '구멍 터졌구나' 했어요. 어디서 물구멍이 터졌다는 말이지요.(중략) 이젠 산지물에 물도 안 보여요. 지금은 지하수로 많이 써서 그런가 물이 안 나오는 것 같아요."



#구술 5

"저는 1938년생이에요. 정방동에 살 때는 '정모시'라는 물을 길어다 먹었어요. 내가 11~12세 무렵인데 팽에다가 물을 길어다 먹었어요. 사시사철 물이 마르지 않고 늘 맑은 물이 퐁퐁 솟아났어요. 어머니가 '빨리 강 물 질어 오라! 밥 먹게!'하면 물허벅을 등에 지고 물을 길러 갔어요. 어릴 때라 물에서 막 헤엄치면서 놀다 보면 시간 가는 줄 몰랐죠. 그렇게 놀다가 집에 늦게 가면 막 야단을 맞았지요. 정모시는 물이 솟아나는 곳을 음용수로 사용하고 그 옆으로 흐르는 시냇물에서 목욕하고 놀았어요. 물이 땅에서 솟아나니 시원하고 좋았어요. 한여름이라도 물이 차고 시원해서 물 속에서 조금만 놀아도 입술이 파래져서 덜덜 몸이 떨여 왔어요.(중략) 서귀포 사람이나 동홍동 사람이나 물 귀한 것은 모르고 살았지요. 중산간들이야 물이 귀했겠지만 서귀포는 물 쓰는 데 큰 어려움은 없었어요. 서귀포 안에는 물이 많아서 살기 좋았어요."



#구술 6

"내가 6남매 중에 셋째인데 열 살 전부터 물을 졌어요. 그게 고생길의 시작인 것이지요.(중략) 그 살아온 역사를 어떻게 다 얘기할 수 있을까요.(중략) 산지물이 여름에는 물이 많이 나는데 겨울에는 물이 잘 안 났어요. 그 때 어르신들이 '산지물이 여름에는 여기에 있다가 다시 겨울에는 친정으로 간다'라고 하는 말을 들었어요. 제주시에 있는 산지천은 친정어머니이고, 여기 산지물을 딸이라고 했거든요. 산지물이 겨울에 친정에 가버리니까 물이 안 난다는 거지요."

이처럼 제주의 귀중한 자원인 용천수와 관련해 우울한 소식도 있다. 제주도민들의 생명수 역할을 하고 있는 용천수의 용출량이 해마다 줄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제주연구원 박원배 박사의 주도로 제주특별자치도가 2016년 발간한 용천수 관리 계획에 따르면 제주도내 용천수 1025곳 중 364곳(35%)이 매립 또는 없어졌고, 남아있는 661곳 중에서도 227곳(34%)은 용출량이 현저히 감소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서귀포시 도심 속 대표적 쉼터인 산지물도 이곳에 물을 공급하는 가시머리물에서 나오는 용출량이 크게 줄면서 물놀이장 운영에 차질을 빚곤 한다.

제주시 외도동 월대천, 도두동 오래물도 상황은 다르지 않다. 용천수의 고갈 원인도 복합적이다. 과도한 지하관정 개발과 건축물 공사, 택지·관광단지 개발이 얽혀 있다. 제주 물 이야기의 슬픈 단면이다.

<강시영 제주환경문화원장(전문가)>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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