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4·3 직권재심 자료사진. 한라일보DB
[한라일보] 제주4·3 당시 억울한 죄를 뒤집어쓴 희생자들이 직권재심과 유족 청구재심을 통해 무죄를 선고받았다.
31일 제주지방법원 형사4-1부, 형사4-2부(재판장 장찬수 부장판사)는 제주4·3사건 직권재심 권고 합동수행단이 청구한 제23차, 제24차 직권재심 재판을 각각 열고 피고인 60명 전원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이날 재심을 통해 제주4·3 당시 내란죄, 국방경비법 위반 죄 등 억울한 누명을 쓰고 옥살이를 하거나 행방불명된 희생자들은 75년 만에 무죄 선고로 명예를 회복했다.
특히 이날 재심에서는 남로당 무장대 총책으로 알려진 김달삼과 이름이 같다는 이유로 경찰에 끌려가 고초를 겪은 고(故) 김달삼 씨의 아들 김순두 씨가 참석해 아버지의 억울함을 증언했다.
남로당 무장대 총책으로 알려진 김달삼은 가명이며 본명은 이승진으로 서귀포시 대정읍 출신이다. 그는 1948년 8월 제주도를 떠나 황해도 해주 남조선인민대표자대회에 참석했다가 1950년 사망했고 군사재판을 받은 사실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피고인 고(故) 김달삼 씨는 제주시 조천 출신으로 무장대 총책 김달삼과는 전혀 다른 사람임에도 이름이 같다는 이유로 자주 경찰 조사를 받는 등 어려움을 겪다 1948년 12월 28일 군법회의에서 내란죄로 징역 5년을 선고받고 목포형무소에 수감됐다가 행방불명됐다.
김순두 씨는 "아버지가 이름이 같다는 이유만으로 자주 불려 가 조사를 받았고 주민번호와 생년월일 등을 이야기하며 풀려나기를 반복했다"며 "당시 4살이었는데 형무소에서 보낸 아버지의 엽서를 받고 어머니가 울다가 쓰러졌던 모습을 기억한다"고 말했다.
이어 "어머니가 아버지의 이름 때문에 자식들에게 문제가 생길까 봐 걱정하셨고 누군가 사망신고를 하면 자녀들이 신원조회에 문제가 없을 것이라는 말을 듣고 그렇게 하셨다"며 "1960년대 후반 아버지의 사망신고 당시에도 어머니는 아버지가 살아오실 거라고 생각했다"고 눈시울을 붉혔다.
이날 직권 재심에 앞서 유족 청구재심 재판도 열려 내란 방조 등 혐의로 옥살이하거나 벌금형을 받은 제주4·3 피해자 9명도 무죄 선고를 받았다.
고(故) 임효봉 씨의 아들 임성주 씨는 "제주법원에서 호적 서기로 근무했던 아버지는 내가 태어났다는 소식을 듣고 오던 길에 경찰에 끌려가 희생됐다"며 "아버지를 생각하면 내가 죄인이고, 내가 없었다면 아버지도 살았을 것"이라며 눈물을 흘렸다.
또 "아버지가 없어 외로웠고 어른이 되면 아버지의 재심을 받아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는데 당시 재판 상황을 알 길이 없어 막막했다"며 "오늘에서야 아버지의 한을 풀 수 있어 모든 분들께 감사하다"고 말했다.
한편 이날 60명이 무죄를 선고받음에 따라 직권 재심을 통해 누명을 벗은 제주 4·3 희생자는 총 671명으로 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