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도 출향해녀/ 기억의 기록] (4)다시 찾은 울릉도

[독도 출향해녀/ 기억의 기록] (4)다시 찾은 울릉도
울릉도 땅 밟은 제주해녀… "어제 본 듯 기억 선명"
  • 입력 : 2023. 07.05(수) 00:00
  • 이태윤·강다혜 기자 lty9456@ihalla.com
  • 글자크기
  • 글자크기
제주해녀들, 포항·울릉도 찾아
출향물질 당시 기억·경험 공유
울릉도·독도해양연구기지 등
곳곳에 독도 수호 기록 '생생'


[한라일보] 울릉도와 독도 출항 물질에 나섰던 제주해녀들이 울릉도 땅을 다시 밟았다. 해녀들은 약 50년 전의 기억임에도 선명하게 당시를 묘사했다. 독도와 울릉도 곳곳엔 제주해녀가 독도 수호의 주체라는 명백한 기록이 새겨져 있었다. 포항과 울릉도 일원을 찾은 제주 해녀와 제주 출신 울릉도 해녀들의 기록을 3차례에 걸쳐 보도한다.

울릉도 풍경. 오하준 촬영 전문가

▶"울릉도 바닷속, 어제 본 듯 훤해"= "울릉도에 해녀들이 여럿 생기기 전에는 전부 제주 해녀라났주. 내가 기억하기론 80명도 넘어서. 그때 쌉지만 안허고 집에서 부르지만 않아시민 이디서 이제꺼정 살아실거라(그 당시 갈등이 없었거나, 집(제주도)에서 부르지 않았다면 여기서 지금까지 지냈을 것)". "여기 바당은 게 이제 들어가랜 해도 들어가지지게. 바당 안에 어느 고망에 뭐 이신지도 다 알아져. 육지는 헤끔 변했주마는, 이 울릉도 바당 속은 훤하게 알아지주. 이 정도 파도는 센 것도 아니라.(여기(울릉도) 바닷속은 지금 물질을 하라고 해도 들어갈 수 있다. 바닷속 어느 틈에 뭐가 있는지도 전부 알 수 있다. 육지는(시간이 흘러서) 조금 변했지만, 바닷속은 다 알 수 있다)"

과거 독도 출향 물질에 나섰던 제주해녀들의 발자취가 '독도 수호'의 일환으로서 재조명 작업이 이뤄지고 있는 가운데, 제주해녀들이 포항과 울릉도 일대를 직접 찾아 출향 물질 당시의 기억과 경험을 공유했다. 지난해 같은 일정으로 여정을 마친 선배 해녀들에 이어 독도·울릉도 출향 해녀 7명이 참여했다.

경상북도 울릉군 북면 소재 울릉도·독도해양연구기지 해양생태관에서 제주해녀들이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강다혜기자

경상북도 포항에 도착한 첫날 '경북·제주 해녀들의 해양역사 문화 가치창출을 위한 간담회'에 참석한 데 이어, 둘째 날부터 본격적인 여정을 시작했다. 울릉도 일대를 돌며 독도와 울릉도의 역사를 답사한 후, 울릉도에 여전히 남아 거주 중인 제주 출신 해녀들과 대화의 시간도 가졌다. 이어 울릉군 독도관리사무소의 협조를 받아 독도평화호를 타고 해녀들이 물질했던 독도 어장과 생활했던 동·서도를 둘러보고 당시 독도에서 생활했던 해녀들의 생활사에 대한 기록화 작업을 진행할 예정이었지만, 독도 방문은 기상조건 악화로 인해 불발됐다.

첫 발걸음에 나선 늦은 저녁, 포항의 한 호텔에서 만난 양 지역 해녀들은 마치 친자매를 만난 것 같다며 한동안 이야기꽃을 피웠다. 제주해녀협회 소속 한 해녀는 포항 해녀와 이야기를 나누다 포항 바다에 대해 "이래서 옛날에 제주해녀들이 포항 바당으로 물질을 그자락 왔주.(그렇게 많이 왔지) 특히 협재는 바당 속이 모래여서 물건이 많이 어서. 게난 연 내내 물질도 못허여.(바닷속이 모래여서 해산물이 많이 없고, 1년 연속 물질을 할 수 없다) 여기는 동해니까 차도 없고(조수 간만의 차도 없고) 얼마나 좋아. 잠수 안해도 널렸주(잡을 것이 지천에 널렸다)."라며 제주해녀들이 물질을 떠날 수밖에 없었던 사연을 읊기도 했다.

본격적인 여정이 시작된 둘째 날, 울릉도 사동여객선터미널 도착한 제주해녀들은 울릉도 곳곳을 둘러보며 과거 물질 기억을 되새겼다. 곳곳을 이동하거나 명소를 찾을 때마다 "그래 가면(그쪽 방향으로 가면) 사동이라! 이딘(여긴) 우리 언니 살아난 데(살았던 곳)."라며 서로의 기억을 앞다퉈 공유하고 나섰다.

독도, 울릉도 어업과 물질 이야기를 들려달라고 하자 마치 어제 일을 말하는 것처럼 독도와 울릉도 생활 당시의 경험을 들려주었다. 해녀들은 그때 그 시절 울릉도, 독도의 풍경이 기억의 보따리를 주섬주섬 풀어놓았다.

한 해녀는 "우리는 독도엔 거의 못 갔고, 우리 언니 우리 선배 해녀들은 많이 갔지. 우린 한 달에 한 번 정도 가거나 말거나 해서. 그래도 독도는 기억 나지" "그곳엔(독도에는) 희한하게도 입구 앞에 큰 바우(바위)가 있어서 바람도 파도를 막아줬어. 임시로 묵기에는 좋았주. 샘물이 하나 솟았는데, 거기서 물옷을 빨아서 널었어. 바위 하나하나가 다 기억나. 독도 물속도 기억이 나지. 미역도 많이 났주마는 전복도 많아나서"라고 말했다.

▶울릉 섬, 독도에 기록된 제주해녀=독도박물관, 독도의용수비대역사기념관, 울릉도·독도해양연구기지 등 울릉도 내 독도·울릉도의 역사를 기록한 각종 시설에는 제주해녀들의 기록이 두드러졌다.

거북바위 앞의 김옥자 독도 출향 해녀. 강다혜기자

특히 해녀들과 함께 찾은 울릉도·독도해양연구기지 내 해양생태관에 들어서자 첫 공간에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제주해녀, 독도 바다를 일구다'라는 제목으로 제주해녀의 물질 기록이 새겨져 있었다. 특히 지난해 설치된 제주시 한림읍 협재리에 있는 울릉도 출향 해녀 기념비의 복제본이 눈길을 끌었다. 기념비는 울릉도와 독도에 출향한 제주해녀에 대한 기록을 담고 있다.

일정에 동행한 김수희 (재)독도재단 교육연구부장이 직접 독도의 해녀바위와 해녀기념비 등 독도·울릉도 출향물질에 나섰던 제주해녀에 관한 기록들을 설명했다.

기념비 옆에 나란히 세워진 '제주와 울릉도·독도를 이어준 물숨을 기억하며' 제하의 표지석에는 "제주시 한림읍 협재리에 1956년 세워진 제주 출향해녀의 울릉도.독도 물질을 기록한 울릉도 출어기념비를 원본으로 유네스코 인류무형무화유산인 제주해녀 문화와 삶의 터전으로서 울릉도·독도바다를 일군 제주 출향해녀를 기억하기 위해 이 비석을 세웁니다"라고 해녀들의 공헌을 기록하고 있었다.

특히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제주해녀, 독도바다를 일구다'라는 제목으로 다음과 같은 글이 게재됐다. 독도 출향 물질에 나섰던 제주해녀에 대한 기록이다.

"제주해녀의 역사는 삼국시대 이전부터 시작한다. '바다'라는 공동의 부엌에서 바다가 허락한 시간을 존중하며 자연과 공존한 해녀. '저승에서 벌어서 이승에서 쓴다'는 해녀. 제주 해녀 문화는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서 소중한 인류의 자산이다. 제주 해녀의 독도 출어는 해방 이전부터 시작됐다. 제주 해녀는 독도의용수비대의 요청으로, 독대 경비대의 요청으로, 독도 주민 최종덕의 요청으로 많게는 30~40여 명이 독도에서 미역 채취 작업에 참여했다. 현재도 울릉도에는 제주 해녀 출신 분들이 생존해 계신다. 독도 주민 김신열씨 또한 제주 해녀 출신이다. 제주 해녀는 독도를 일군 또 다른 주인공이었다. 불턱은 해녀를 지켰고, 해녀는 가족을 지켰고, 울릉도는 독도를 지킨 해녀의 대합실이었다."<특별취재팀=이태윤 정치부차장·강다혜기자>
  • 글자크기
  • 글자크기
  • 홈
  • 메일
  • 스크랩
  • 프린트
  • 리스트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스토리
  • 밴드
기사에 대한 독자 의견 (0 개)
이         름 이   메   일
4213 왼쪽숫자 입력(스팸체크) 비밀번호 삭제시 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