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색의 뜨개와 옷에 엮인 기억과 마주하다

색색의 뜨개와 옷에 엮인 기억과 마주하다
임흥순 개인전 '기억 샤워 바다'
4·3과 '재일'의 역사 살아낸
고 김동일 할머니의 기억 품은
2000여점 유품 재구성·나눔
  • 입력 : 2023. 09.17(일) 15:51  수정 : 2023. 09. 19(화) 08:36
  • 오은지기자 ejoh@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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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장 로비에 설치된 '등대'. 메모리얼 샤워 MEMORIAL SHOWER와 임흥순 작가 제공

[한라일보] 4·3과 '재일(在日)'의 역사를 살아낸 고 김동일 할머니의 삶의 기억을 그녀가 생전 남긴 색색의 옷과 뜨개 등 2000여 점의 유품으로 마주하는 자리가 마련됐다. 시각예술작가이자 영화감독인 임흥순 작가가 지난 16일부터 제주4·3평화기념관 2층 기획전시실과 로비에서 펼쳐보이고 있는 개인전 '기억 샤워 바다'다.

제주 4·3당시 연락책으로 활동한 김동일은 1950년대 후반 일본으로 건너가 2017년 작고할 때까지 재일제주인의 삶을 살았다.

임흥순 감독은 2015년 한국과 일본의 국교 정상화 50주년을 기념해 기획된 '아티스트 파일 2015:동행 ' 전시를 준비하며 김동일 할머니를 처음 만났다고 했다. 당시 도쿄의 할머니 집을 방문한 임 감독은 "집 안이 온통 정리되지 않은 물건과 옷으로 쌓여있었다. 감당할 수 없었던 경험과 기억들이 흐트러져 있고 정리할 수 없는 역사를 쌓아놓은, 혹은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는 것 같았다"고 그때를 기억했다.

그후 2017년 임 감독은 유족의 동의를 얻어 할머니가 남긴 약 2000여점의 유품을 한국으로 옮겨왔고 그해 '우리를 갈라놓는 것들' 전시에서 소개했다. 그리고 6년이 지나 소중히 보관했던 유품들을 할머니의 고향 제주에서 다시 꺼내놓는다.

"새로운 기억 문화 체험 기대"

오는 11월 12일까지 이어지는 전시 기간 할머니의 유품은 방문객들의 참여로 나눔 될 예정이다. 주최 측은 유품을 나누는 과정이 4·3을 추념하고 그 역사를 살아낸 김동일 개인을 기억하며 현재를 거쳐 미래를 향하는 특별한 애도 방식인 '기억 문화' 체험이 되길 기대하고 있다.

'기억 샤워 바다'전은 로비 천장의 하늘을 배경으로 걸린 할머니가 평생 떠온 뜨개 132개를 활용해 만든 '등대'를 시작으로 세 개의 공간에서 만날 수 있다.

전시장 로비에 설치된 '등대'. 메모리얼 샤워 MEMORIAL SHOWER와 임흥순 작가 제공

전시장 로비에 설치된 '등대'. 메모리얼 샤워 MEMORIAL SHOWER와 임흥순 작가 제공



제1전시장에선 다양한 처지의 재일의 삶을 담은 임 감독의 신작 영상 '바다'가 상영된다.

제2전시장 '옷의 바다'에선 앞서 제주, 서울, 일본 오사카 등에서 열린 스무 번의 유품 나눔 워크숍 '고치글라 Run with Me' 참여자들의 소감과 할머니의 옷을 각자의 방식으로 수선, 재창작한 결과물 등을 사진, 텍스트, 영상으로 소개한다.

관람객들은 이곳에서 직접 할머니의 옷을 선택해 가져가 각자의 워크숍을 할 수 있다.

'옷의 바다' 전시장. 메모리얼 샤워 MEMORIAL SHOWER와 임흥순 작가 제공



제3전시장 '말의 바다'는 임 감독과 윤여일 작가(제주대 공동자원과 지속가능사회 연구센터 학술교수)가 공동기획했다. 제주의 평화활동가, 생태관찰자, 대안적 생활자의 삶과 목소리가 이 공간에 초대됐다.

전시 연계 행사로 10월 6일 제주대학교 탐라문화연구원과 공동기획으로 '학술 심포지엄:기억, 연결, 연대'가 예정돼 있다.

한편 '기억 샤워 바다'는 올해 아르코 공공예술사업으로 선정돼 내년까지 진행되는 '메모리얼 샤워 MEMORIAL SHOWER' 프로젝트의 연계 전시다. 모든 과정은 웹사이트(www.memorialshower.com)에 기록되며 내년엔 메타버스와 출판, 영상 작업으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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