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라일보] 가을이 익어가면서 북녘 땅에서 번식을 마친 철새들이 남쪽 나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특히 도요물떼새들이 대거 내려오고 있으며, 벌매 무리도 속속 확인됐다. 철새들의 이동은 가히 신비로움 그 자체이며, 중간 기착지에서의 곡예비행과 먹이탐색 행동도 탐조인들을 황홀케 한다. 분명한 목적을 가진 행동 외에도 딱한 사연이나 해석하기 어려운 장면을 종종 포착하게 된다.
구좌읍 종달리 해안조간대는 도요류, 물떼새류, 백로류, 오리류 등의 먹이활동 공간으로 장거리 이동을 해야 하는 도요새들에게도 중요한 에너지 충전소이다. 그러니 가을철 이동시기에 종달리를 비롯해 제주의 모래갯벌이나 하천 기수역에 가면 다양한 도요새들을 만날 수 있다. 도요새들은 생김새가 비슷하기 때문에 탐조 초보자에겐 종을 구분하기에 쉽지 않다. 게다가 대부분의 도요새는 암수 깃털색이 같으며, 여름과 겨울깃이 다르다. 좀도요나 세가락도요처럼 몸집이 작은 도요새들은 있는지도 모를 정도이나, 뜻하지 않는 행동이 탐조의 기쁨을 더해준다.
비번식기에 탐조하다 보면 분명 번식행동으로 오해할만한 장면을 더러 접한다. 세가락도요도 그 중에 하나다. 무리 중에 한 개체가 다른 개체의 등에 올라타게 되면 순간 제주도에서도 세가락도요가 번식하려나 하고 긍정적 착각 내지는 확신하게 된다. 번식시기는 아니지만 두 개체가 암수가 아니고 동성일 수도 있다. 사실 자연계에서는 비번식기에 동성 또는 이성 개체들이 쌍을 이루는 여러 사례가 보고돼 있다. 유인원을 비롯해 고래류, 유제류 등의 포유류와 오리류, 백로류, 도요류, 갈매기류, 맹금류 등의 조류에서도 나타난다. 생물학자 부르스 베게밀은 그의 저서 '생물학적 풍요'에서 동물세계에서의 동성애 사례를 열거하면서 인간의 관점에서 동물의 세계를 비이성적으로 평가하려는 시도는 잘못이라고 지적했다.
번식을 위한 암수의 이성애 행동을 제외한 번식행동을 낭비, 불륜, 탕진이라는 잣대로 설명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으며 야생동물의 동성애 행동이 비과학적이고 반이성적이라는 주장도 납득하기 어렵다. 지금 이 순간에도 자연생태계에선 다양하고 신비한 일들이 생겨나고 있으며 비번식적인 이성애와 동성애 행동도 그렇다. 그러한 사례들을 하나하나 떼어서 평가하기보다는 보다 통섭적으로 해석해야 한다. 자연의 섭리를 편견이나 예외가 아닌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순수함이 바로 자연을 제대로 바라보는 길이다. 세가락도요가 중간기착지에서 상대와 성적 행동을 보였다고 보편성을 벗어난 못된 행동으로 여길 필요까지 없다. 뒷발가락이 없는 세가락도요의 자연스런 행동을 통해 그들의 일상을 고스란히 이해하려는 태도가 중요하다. 야생 동물의 순간 포착이 특정 종의 살아남기를 위한 진화론적 접근방식으로만 보는 것이 아니라 자연을 보다 정확하게 탐색하는 계기가 돼야 한다. 다만, 야생의 아름다움과 경이로움을 놓고서 의도적이고 상식적이지 못한 관찰과 해석은 분명히 경계해야 한다. <김완병 제주도민속자연사박물관 학예연구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