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라일보] 길가에 피는 코스모스는 언제 보아도 정겹다. 코스모스를 보면 초등학교 운동회가 떠오른다. 파란 하늘과 만국기 아래에서 "청군 이겨라 백군 이겨라" 목이 쉬는 줄도 모르고 목청껏 소리쳤던 그 시절로 마법처럼 돌아간다.
운동회 준비기간 중에는 친한 친구 사이라도 청군과 백군으로 나뉘어 치열하게 경쟁하고 다투었던 생각이 난다.
운동회 연습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가에는 코스모스가 아름답게 피어 있었다. 청군과 백군으로 나뉘어 지나친 경쟁심으로 상대 팀을 상징하는 코스모스꽃들을 망설임 없이 꺾어 버린 기억이 있다. 청색 코스모스가 없어서 백군들은 홍색 코스모스꽃을 대상으로 해코지를 했다. 이러한 행동들로 당시 친했던 친구들과 많이 다투기도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으로 어리석고 유치한 행동들이었고, 왜 그런 경쟁을 했는지 뒤늦은 반성을 하게 된다.
더불어 옛날 초등학교 시절을 회상해 보면, 지금의 초등학생들은 상대적으로 어른스러워 보인다. 2000년 이후에 태어난 아이들이 급변하는 현대사회의 분위기와 진보하는 문명 속에서 자연스럽게 동화되고 적응한 결과가 아닐까 생각된다. 60·70년대의 초등학생과 2020년대의 아이들을 비교해 보면, 요즘 아이들은 스마트폰과 컴퓨터를 능숙하게 다루며 사이버 공간에서 놀거나 친구들과 소통하며 활동하는 등 참으로 다른 세상에서 성장하며 살고 있다. 많은 것들이 변하고 새로운 것들이 생겼지만, 운동회는 여전히 현재의 초등학생들에게도 친구들과 같이 즐거워하고 기다려지는 행사이기를 희망해 본다.
필자가 초등학생이었을 때, 학교까지 가는 길이 시골이라서 그런지 주변에 논과 밭이 대부분이었고, 도로변 꽃길 조성도 지금처럼 제대로 조성된 공간이 없었다. 당시 기억으로는 가을운동회 무렵 길가의 핀 코스모스꽃이 가장 많이 생각이 난다. 지금은 초등학교 시절 친구들이 전국 각지로 뿔뿔이 흩어져 각자의 삶을 살고 있다. 소식을 전해 듣는 친구들이 많지 않아 아쉽지만, 항상 이맘때는 고향 친구들의 소식과 고향의 길가에 피어 있는 꽃들이 시간과 계절을 초월해 항상 마음 깊숙이 그리워진다.
가을이 돼 주변에 코스모스꽃들이 지천에서 피어나면 어릴 적 초등학교 시절이 떠오른다. 그때는 계절마다 꽃들이 피는 시기가 명확하게 구분됐던 것 같다. 하지만 최근에는 기후변화와 환경조건에 따라 코스모스가 여름부터 늦가을까지 피는 것을 주변에서 자주 볼 수 있어, 이러한 변화를 실감하기도 한다.
올가을, 주변에서 열리는 초등학교 운동회에 가보고자 한다. 초등학교 시절의 청군, 백군으로 돌아가 그때를 회상하며 푸르고도 높은 가을 하늘을 바라보고, 참으로 넓게 느껴졌던 운동장에 다시 한번 들어가 걸어도 보고 뛰어보고 싶다. 그 순간, 초등학생 시절로 돌아간 듯한 감정을 느끼며 가을 하늘을 천천히 우러러보고 싶다. <이성용 제주연구원 선임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