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라일보] 감귤이 노랗게 익어간다. 주렁주렁 열린 풍경을 제주 전역에서 볼 수 있다니 감사하다. 며칠 전 조문을 갔는데, 식사 후 감귤이 나왔다. 초록 부분이 약간 남아 있었다. 하나 먹어보니 맛은 괜찮았다. "맛있네!" "에이 아직 덜 익었잖아?" "먹어봐~~괜찮아!" "초록색이 있으면 맛이 없을 것 같아, 손이 안 가" "이거 강제 착색한 건가?" "꼭지가 싱싱하면 아닌데…!" 얘기를 나누며 맛있게 먹었다. 새콤달콤 감귤 맛에 대한 행복한 기억은 평생을 갈 것 같다.
지난 10월 5일 미래감귤추진단 9차 회의가 열렸다. '감귤 상품 기준 변경 검토'를 놓고 오랜 시간 토론을 벌였다. 자연 착색을 기다리며 수확시기를 지연하게 되면 당도 하락과 부피과(껍질이 뜨는 현상) 발생 등 상품 품질이 저하된단다. 그래서 농가에서는 아직 착색이 덜 됐어도 수확을 미룰 수 없고, 착색(50%) 기준에 걸려 판매를 할 수 없으니 화학약품 처리를 하게 된다. 올해 수확하고도 출하 못 한 극조생 품종인 '유라실생'에서는 착색이 50% 미만에서도 맛이 좋았단다. 착색 판단은 어렵고 주관적일 수도 있단다. 맛이 본질인 귤의 품질에서 착색 기준은 걸림돌이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일본의 어느 작가는 '사과는 빨갛지 않다'라는 책을 냈다. 오래전에 읽었는데, 머리로는 이해할 듯하지만 많은 사람에게 사과는 빨간색이다. 여름이 끝날 무렵 맛보는 파란 사과 '아오리'의 새콤함도 나쁘지 않기에 사 먹는다. 그래도 추석 차례상에는 빨간 사과를 올린다. 이 시기 사과들은 저장성이 약해 조금 두면 푸석해지고 맛이 떨어진다는 것도 소비 경험상 알기에 맛있는 '부사'가 나올 때까지 기다린다. 고정관념으로 사물을 보면 한정된 사고의 벽 속에 갇힌다. 스페인의 남부 알리칸테주 칼페 마을엔 빨간색 아파트도 있다. 수많은 회색 건물 속에 빨강과 주황의 그러데이션 된 독특한 색상 때문에 멀리서도 눈에 확 들어온다. 유명 건축가의 아파트 작품을 보기 위해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마을이 됐다고 한다. 고정된 색상의 틀을 깨고 생각의 전환을 한 결과라고 생각한다.
우리 머릿속에는 감귤 색깔의 이미지가 고정돼 있다. 지난 추석 쯤엔 덜 익은 감귤을 카바이트로 익혀 판매하려다 적발된 농가들이 많았다. 감귤품질은 제주 자부심이기에 엄격한 단속은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농가의 고충을 들으며 생각을 바꿨다. 초록색이 있어도 상큼하니 맛이 좋다는 인식을 소비자들에게 심어줄 수 있으면 문제가 될 게 없을 것이다. 땀 흘려 가꾼 농산물을 단속하며 서로 힘들지 않아도 될 것이다. 광센서 선별기로 당산도 측정을 정확히 하고 당당하게 출하하는 생산 농가가 많았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져본다. 감귤의 품질은 새콤달콤한 맛이며 소비자는 초록색이 있어도 맛을 보고 선택할 것이다. <변순자 소비자교육중앙회 제주도지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