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라일보] 마을 이름이 참으로 의미가 깊다. 시흥(始興), 글자 그대로 해석하면 '비로소 흥성하는 마을'이다. 시작의 의미에는 시공간적 상황이 엄존한다. 정해진 어느 시점을 정하여 그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면 이후의 상황을 비로소 새로움이라 여기는 것. 역경의 과거를 부정하지 않으면서 이를 토대로 새로운 희망을 열어가는 자세에서 흥성함이 일어나는 이치를 마을 이름에 가져온 시흥리 조상들의 마음이 감동적이다.
단순하게 정의현이 시작되는 마을로 어설프게 알아 넘기기에는 부끄러움이 앞서게 되는 것이다.
옛 이름은 '심돌개' 포구에서 온 '심돌' 혹은 '심똘'이라 불려 왔다. 한자를 차용하여 역석포(力石浦), 역돌포(力乭浦) 등으로 표기하여 오다가 1905년 시흥리로 바뀌었다. 마을 어르신들이 전하는 말씀을 종합하면 마을 영역에 유난히 큰 돌들이 박혀있는 곳이 많아서 삶의 터전을 일구는 과정에서 그 돌들을 뽑아내고 옮기고 하는 싸움을 하다 보니, 세대가 흐를수록 자연스럽게 마을 사람들이 힘이 세고 강건해지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암반들을 제거하고 활용해야 하는 과정에서 이웃들과 협동해야 가능한 상황이 연속이었다. 한 가족 단위로는 엄두가 나지 않는 일들을 수눌음정신에 입각하여 서로 상부상조하는 과정에서 공동운명체 의식이 견고해졌다는 것이다. 척박한 환경이 오히려 극복 의지 강하게 만들었으며 이웃과 힘을 모으지 않으면 생존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마을의 역사. 그 과정에서 유전자에 가까운 본능이 탄생하였다. 어떠한 어려움과 고난에도 굴복하지 않는 정신적 자산이 그것이다. 이웃마을 사람들도 혀를 내두르는 시흥리 사람들의 단결력은 마을공동체의 극복 의지가 현실적으로 얼마나 값진 것인지 보여주는 것이다.
현기창 이장
마을사람들에게 대대로 내려오는 전설에도 유난히 용력을 보여주는 주인공들이 많은 것으로 보아 주민들이 장사를 선망하는 의식이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이러한 마을 풍토가 삼군신(三軍神)의 한 분으로 추앙받는 백마고지 전투의 영웅 강승우 소위 같은 분이 배출된 것은 아닐까.
마을 대부분이 평탄하게 보이지만 서북쪽 종달리와 경계에 두산봉이 위치한다. 되(斗)에 곡식을 수북하게 쌓은 모습과 같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 두산봉. 위에 올라가 아래를 바라보면 올레1코스의 명성이 그냥 붙여진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관광제주의 숱한 풍광과 절경이 비로소 여기에서부터 시작되니 시흥리라는 느낌과 함께. 두산봉 위에서 얻는 장엄한 감동을 탐방객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을 현실화 시킨다면 시흥리의 경제는 상전벽해와 같은 발전을 이룰 수 있을 것이라고 이구동성으로 강조하고 있다.
원래 시흥리는 일주도로 인근 늦개동네까지 배가 들어왔던 마을이다. 일제강점기, 지금 바닷가 모래사장 부근 양어장을 막아서 바닷물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하여 땅을 얻고 가옥을 짓기 시작하여 마을 규모가 더욱 커졌다고 한다. 지금도 옛날 바닷물이 들어오던 지역은 해수면보다 아래에 위치한 곳이 많다.
현기창 이장에게 마을공동체의 가장 큰 자긍심을 묻자 대답은 딱 네 글자였다. "심돌정신!" 호연지기를 가지고 그 어떤 역경에도 굴하지 않는 조상님들의 극복 의지를 계승하여 후손에게 전하고자 하는 각오. 출향인사들의 향우회 모임에서도 구호는 심돌정신이라고 크게 외친다고 한다. 불문율에 가까운 어떤 일체감을 보유하고 있다는 것은 단순하게 전통으로 치부할 수 없는 정신문화라고 해야 할 것이다.
풍광이나 지리적 위치, 주민들의 의식 수준 등을 종합하여 바라보면 관광시흥의 잠재력은 엄청나다고 할 수 있다. 농업경관이 빼어나다는 독특한 강점까지 더하면 바다가 자원과 함께 무궁한 발전이 예약된 마을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정책당국에서 시흥리만의 독창적인 전략을 수립할 수 있도록 외부에 어떠한 것들을 모방하고 따라 하지 않도록 할 수 있다면. <시각예술가>
돌 하나에 담긴 정신문화
<수채화 79㎝×35㎝>
동일 시간에 동일 공간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아무 거리낌 없이 받아들이는 유형무형의 존재를 학술적인 표현으로 '문화'라고 배웠다. 마을 중심가 오래된 나무 그늘이 있고, 돌로 쉼터를 만들어 거기에 건장한 장정도 들기 힘든 자연석 하나가 올려져 있다. 미의식을 가지고 감상하는 용도가 아니라. 이 섬의 전통 중에 하나인 '뜸돌'처럼 들어서 용력을 과시하는 것. 마을공동체의 정신적 상징이요 심리적 일체감을 주는 저 돌. 주변은 평범한 마을 모습이다.
이방인들이 보기에는 이유를 알 수 없는 돌이리라. 마을 사람들에게는 엄격한 규약보다 강한 힘을 지닌 '정신문화'다. 어떤 작위적인 상징체계를 형상화하여 나타낼 필요가 없다. 저 돌 하나면 족하다. 이를 문화의 힘이라고 확인하고자 한다. 시흥리 사람들의 '심돌정신'이 살아 숨 쉬는 정신적 바위가 되어 저기 놓여 있다. 그 옛날, 다른 마을 청년이 지나가기를 원하면 이 돌을 들어 올릴 수 있을 때 통과를 허락하였다는 자부심. 어머니들은 꼬마들이 저 돌을 보며 무슨 마음을 먹고 있는지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마을공동체 내부적 자존심 경쟁은 지혜의 돌이 된다. 어서 커서 나도 저 돌을 들어 보일 것이라는 꿈을 가지고 성장하였으리니, 없는 살림이지만 영양가 있는 것은 먹이고 싶은 욕심으로 더욱 부지런하게 일하였을 것이다. 그 아들이 자라서 청년이 되고 저 돌을 들었을 때 어머니의 표정을 생각했다. 불굴의 개척정신이 집약된 마을공동체의 아름다운 문화.
산과 밭이 만나 빚은 선율
<수채화 79cm×35cm>
두산봉이라는 명칭보다 '말미오름'이라고 부르는 것이 필자에게는 더욱 정감이 있고 의미가 깊게 다가온다. 나름대로 개인적인 해석이 있어서 그렇다. '말미암다'라고 하는 우리말이 자꾸 떠오르니 어떤 원인에 의하여 새로운 시발점이 되는 느낌이 있는 것이다. 수묵산수화가 등장하기 전, 청록산수시대라고 하는 동양화의 역사를 떠올리며 말미오름을 그렸다.
청색과 녹색을 오묘하게 조합하여 채색, 엷은 청록의 은은한 공간감을 가지고 근경에 있는 가을날의 밭과 대비를 이루게 하였다. 그 만나는 경계가 주제다. 선의 흐름이 오름과 하늘이 만나는 선에서부터 맨 앞에 있는 밭담의 가로선까지 다섯 개다. 어떤 교향악이 흐르는 느낌을 받게 되는 시흥리 농경지의 풍경. 하늘은 백색 여백으로 하고서 가로선들이 자연스럽게 이어지고 흐르는 느낌을 평면적인 대비효과처럼 단순화시켜서 그린 것이다. 물상과 물상이 만나는 지점에 강조된 경계를 통하여 한 개의 시점에서 바라보는 풍경이라고 하는 것이 얼마나 큰 한계를 지니고 있는 것인지 확인하려고 노력하였다. 사실주의적인 풍경으로는 도저히 이 소중한 선들의 판타지를 표현할 수 없었기에 이러한 선택을 하게 된 것이다. 밭에서 익은 곡식이 돌담이라고 하는 경계 속에서 청록색 산과 만난다. 인위가 투입된 삶의 모습과 산이라고 하는 근원이 만나서 나누는 이야기를 그림을 통하여 듣고 싶은 욕심에서 그렸다. 빛과 색보다 중요한 어떤 것을 찾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