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치화의 건강&생활] 위암 수술 후 빈혈

[한치화의 건강&생활] 위암 수술 후 빈혈
  • 입력 : 2023. 11.15(수) 00:00  수정 : 2023. 11. 15(수) 11:05
  • 송문혁 기자 smhg1218@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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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라일보] 20년 전 할아버지가 치매 증상을 보이는 할머니와 함께 진료실에 찾아왔다. 할아버지가 할머니를 구박하는 것이 무척 안쓰럽게 보였고, 혈액검사 결과 할머니가 심한 빈혈과 비타민 B12의 결핍을 보였다. 할머니는 8년 전에 위암으로 큰 수술을 받았다고 한다. 바로 비타민 B12를 근육에 주사하기 시작했고, 1년 정도 치료를 계속하면서 치매 증상이 점차 없어져 갔다. 그 뒤에 상황이 바뀌어서 두 분이 병원에 올 때마다 거꾸로 할머니가 할아버지를 야단치는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오늘 비타민 B12 결핍에 의한 빈혈 때문에 비타민 B12를 매일 복용하고 있는 노인이 자신의 빈혈이 “과거에 받은 위암 수술이 원인인가?” 그리고 “왜 수술을 받고 한참 있다가 생겼는지?”를 궁금해 했다. 많은 비타민들 가운데 비타민 B12는 물에 작 녹은 비타민으로 우리 몸을 이루고 있는 모든 세포들의 세포핵 속 유전물질인 DNA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도와준다. 또한 신경세포의 기다란 돌기인 축삭(액손)을 둘러싼 물질인 미엘린을 합성하는 과정에도 관여한다. 만일 비타민 B12가 부족해지면 세포의 수가 늘어나는 세포증식과 세포가 성숙해가는 단계에 장애를 일으킨다.

그 결과 뼛속 골수에서 적혈구들이 충분히 만들어지지 않아서 특이한 거대적혈모구형빈혈(巨大赤血母球形貧血, megaloblastic anemia)이 일어나고, 혓바닥도 표면이 쇠고기처럼 반질반질하고 빨갛게 변한다. 이와 더불어 신경세포들의 변성을 일어나서 손과 발 끝부분부터 시작되는 저림, 찌르는 듯한 통증, 감각이 무뎌지는 말초신경병 증상들과 우울증으로부터 치매, 각종 정신질환들까지 일으키는 뇌 관련 증상들, 그리고 양쪽 하지마비나 심하면 배뇨와 배변 장애까지 일으키는 척수관련 증상들이 일어나기도 한다.

음식물 속에는 비타민 B12가 들어있다. 비타민 B12가 흡수되는 과정은 매우 독특하다. 위 속으로 들어온 음식물에서 비타민 B12가 분리되고 나면, 위 내부의 벽을 이루고 있는 세포들 중 하나인 벽세포(壁細胞, parietal cell)들이 만들어서 위액으로 분비하는 내인자(內因子, intrinsic factor)라는 특수한 물질과 결합한다. 내인자와 결합한 비타민 B12는 흡수장소인 소장의 끝부분까지 파괴되지 않고 무사히 이동해서 몸속으로 흡수된다. 위암 때문에 할 수 없이 위 전체를 절제하면 내인자를 만들어내는 위벽세포들까지 모두 없어져서 비타민 B12결핍이 온다.

다행스럽게도 위 전체가 제거되더라도 몇 년 동안 이용될 만큼의 많은 양의 비타민 B12가 간 속에 저장되어 있어서 결핍이 바로 발생하지 않는다. 따라서 비타민 B12가 결핍된 이들에게는 비타민 B12의 치료와 재발방지를 위해 1~2 개월 간격으로 비타민 B12를 평생토록 근육에 주사해야 한다. 요즘 국내에 이 주사약이 없어져서 많은 사람들이 걱정하고 있다. 과거부터 위가 없어지면 내인자도 없어지기 때문에 비타민 B12는 아무리 먹어도 소용이 없다는 생각을 해왔다.

그렇지만 약 50년 전에 상당량의 비타민 B12를 입으로 복용해도 잘 알려지지 않은 방식으로 흡수가 된다는 사실이 이미 밝혀졌고, 실제로 이를 매일 복용시켜도 주사와 똑같은 효과를 얻고 있어서 크게 걱정할 필요는 없다. 아무리 그렇다고 할지라도 주사가 꼭 필요한 환자들도 있으니 주사약을 조속히 준비해야 함이 마땅하다. 위암으로 위 전체를 제거한 수술을 받은 환자들과 이들을 돌보는 의사들은 암의 재발만 걱정하지 말고 비타민 B12 결핍으로 인한 고통을 겪지 않도록 관심이 필요하다. <한치화 제주대학교병원 혈액종양내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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