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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觀] 무대를 쓰는 법
최다훈 기자 orca@ihalla.com
입력 : 2021. 06.25. 00:00:00

영화 '크루엘라'.

드라마 '펜트하우스'는 예술고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이야기다. 성악을 하는 주인공들의 성장담 혹은 성공담이냐고? 물론 아니다. 이 드라마에서 성악과 예술은 그저 배경으로만 존재한다. 솔직히 말하면 배경의 기능을 제대로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탐욕과 배신, 살인과 치정을 위한 무대로만 존재하는 청아예고는 그저 구색일 뿐이다. 시각적 화려함을 위해 동원된 어떤 장치 그러나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이 어설픈 설치는 주인공들의 패악과 함께 본연의 가치로 시청자를 건드리지 못한 채 잊혀지고 있다. 천서진의 광기 어린 연주, 배로나의 처절한 독창이 울려 퍼졌지만 누구도 '펜트하우스'가 클래식이라는 장르를 다루는 드라마라고 생각할 수가 없다. 비단 '펜트하우스'뿐만이 아니라 국내에서 제작되는 많은 드라마와 영화 속에는 이른바 전문직들이 등장한다. 아침 드라마와 일일 드라마에서는 늘 디자인 파트의 실장님들이 등장하는데 그 등장은 PPL만을 위해서였음이 분명해 보인다. 극 중 구두, 속옷, 스포츠웨어 등 다양한 브랜드들의 디자이너들은 무슨 일을 하는지 도무지 알 수 없는 상태로 사무실에서 연적과 신경전을 벌이다 소리를 지르고 어김없이 불륜이 발각되고 그 결과로 신분 상승을 해서 본부장이 되거나 여의치 않으면 좌천되고 퇴사한다. 물론 그 후엔 복수를 다짐한다. 어엿한 직업과 직함을 부여받았으나 디자이너는 디자인을 하지 않고 오피스는 세트 촬영을 위해서만 존재하는 식이다. 거의 비슷한 패턴으로 등장하고 있는 이 흐름에 이제는 실소가 나올 정도다. 도대체 이 이야기를 쓰는 작가들은 디자이너라는 직업인들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한숨이 다 나올 정도다. 물론 디자이너라는 직업에 국한된 것은 아니다. 뜬금없이 돌침대와 건강식품 대리점주들 그리고 치킨 체인점 사장님들이 나타나기도 한다. 재벌가의 맞선도 유명한 커피 체인점에서 이뤄진다. 아무도 이유를 묻지 않는데 이유가 너무 뻔해서 일거라고 짐작한다. 그런데 이것이 K-드라마의 시그니처라고 한다면 낯 부끄럽다. 세계적으로 인기를 모은 국내 드라마 '대장금'은 분명 직업인이 주인공인 드라마였고 그 주인공을 다각도로 관찰하고 응용한 그 점에서 특별한 매력을 지녔었는데 말이다. 모든 것이 자극이라는 토핑 아래 협찬이라는 일차원적 대입 아래 무색해져 버린 이러한 작품들의 제작 관행은 이미 반성할 시점을 한참 지난 것 같다.

 디즈니의 '크루엘라'는 의외로 K-드라마틱한 이야기였다. 이 작품에서 출생의 비밀이 이렇게 중요한 요소일 줄은 몰라서 조금 당황스럽기까지 했다. 디즈니 최고의 여성 빌런이라는 홍보 문구에 걸맞게 '크루엘라'는 복수를 장전한 채 분노의 질주를 감행하는 여성 크루엘라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크루엘라'에는 히트 팝 넘버들이 주야장천 울려 퍼지고 의상과 미술 역시 주인공의 옆에 바싹 붙어 현란한 드라이빙을 함께 한다. 시각적, 청각적 쾌감에 비해 이야기의 쾌감은 조금 느린 편이지만 사이드들이 너무 훌륭해 메인 디쉬의 심심한 맛이 상쇄되는 부분이 있었다. 크루엘라는 디자이너를 꿈꾸다 결국 디자이너가 되는 인물이다. 이 인물의 여정에는 직업인에 대한 욕망과 결과가 뚜렷하게 시각화돼 있어 보는 쾌감이 대단했다. 극화된 이야기 안에서 캐릭터의 욕망과 노선이 일치할 때, 그 캐릭터를 통해 보여 주고 싶은 것들이 또렷할 때 생생하게 구축되는 지점이란 이런 것이구나 하고 감탄할 만한 지점들이 있는 영화였다. 동시에 영화에서 다루는 패션의 요소들이 감상 후 흥미롭게 이어졌다. 종합예술이라는 말이 더없이 어울리는 영화라는 장르를 통해 파생되는 새로운 호기심들이 충돌하며 이 영화를 더욱 넓게 해석하게 되는 것이다. '크루엘라'는 영화를 만드는 요소들에 대해, 영화의 무대를 채우는 법에 대해서 캐릭터의 속내와 외향을 통해 다각도로 흥미로운 지점들을 마련해 놓은 근사한 편집샵 같은 영화였던 것이다.

 몇 년 전 전 세계적으로 큰 인기를 얻었던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이란 작품이 국내에서 개봉했을 때 한국 드라마의 막장 요소에 비하자면 이 영화는 너무 순한 맛이다 라는 평가가 있었다. 재벌가의 도련님과 결혼을 앞둔 평범한 여성의 이야기는 국내 작품 속에서 너무도 많이 다뤄졌기 때문에 국내 관객들이 보기엔 흔한 소재일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영화의 인기는 비단 이야기 때문은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계급 간의 충돌을 다루는 이 작품은 그 충돌의 지점들을 섬세하게 구현해냈다. 뻔한 이야기를 뻔하지 않은 것들로 채우는 법에 대한 고민이 영화 곳곳에서 제 몫을 해냈다고 생각한다.

 한 편의 영화를 만드는 출발점은 물론 이야기일 것이다. 그러나 이야기 만으로 인상적인 결과를 장담할 수는 없다. 이야기를 장착한 캐릭터가 마음껏 움직일 수 있는 무대를 만드는 일에 대한 고민 또한 매우 중요할 것이다. 영화의 기술적인 요소들이 이야기와 합을 맞췄을 때 시나리오에 있는 텍스트들 통한 마음껏 자신의 욕망을 뽐낼 수 있는 착장을 갖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부디 더 많은 이야기들이 무대를 쓰는 법을 고민하기를 그래서 오랫동안 준비한 런웨이의 탄생을 관객들과 쾌감으로 나눌 순간이 많아지길 바란다.

<진명현 독립영화스튜디오무브먼트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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