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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향기/토요일에 만난사람
[토요일에 만난 사람](36)4월을 노래하는 시인들
"4·3의 현장에서 詩를 씁니다"
/진선희 기자
입력 : 2007. 03.31. 00:00:00

▲25년 넘게 인연을 가꿔온 강덕환 김경훈 오승국(왼쪽부터)시인은 한결같이 4·3의 현장을 누벼왔다. /사진=김명선기자 mskim@hallailbo.co.kr

문학동아리서 만나 25년 넘게 인연

학살터 누비며 체득한 정직한 언어


 '고운 아인 다 죽고/ 궂은 것만 살안'(김경훈의 '제주현대사')

 다시 4월이다. 벚꽃잎이 후두둑 떨어지는 봄날에 세 명의 시인을 만났다. 강덕환(46) 김경훈(45) 오승국씨(46). 제주대 문학동아리 신세대, 풀잎소리 동인, 제주청년문학회, 제주작가회의 그리고 4·3은 이들의 공통 이력서다.

 80년대 초반 대학에서 만난 세 사람은 '신세대' 회원들과 함께 문학행사로 4·3 소재 시극을 만들거나 자취방에 모여 남몰래 추모제를 지냈다. 4·3을 드러내놓고 말할 수 없던 시절이었다.

 '애꿎은 한 사람 불러내어/ 그런 사람들을/ 가리키라고 하면/ 이사람 저사람 요사람/ 손가락으로 지적해야만 했지/ 지독한 토벌군경의 억지에/ 어쩔 수 없었지// 그 손가락질이/ 결국 총이 되어/ 죄없는 사람/ 많이 죽였지'(오승국의 '손가락총'일부)

 이들은 1989년 공개적으로 치른 첫 4·3 추모제의 기억을 한참 풀어냈다. 최루탄 가스를 뚫고 제주시민회관을 찾은 사람들로 행사장에 매캐한 냄새가 가득찼지만 가슴 한켠 뜨거운 기운이 차올랐다고 했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제주도의회 4·3특별위원회 4·3피해신고실 업무에 참여하게 된 세 사람은 4·3에 대한 인식을 한층 키워나간다. 변죽에서 집적대온 4·3 시에 대한 반성이 일었고, 믿음직한 언어로 4·3을 온 몸으로 감싸안고 싶었다.

 '집이건, 연자방앗간/ 깡그리 무너지고/ 동굴속으로 숨어든 사람들마저/ 다시 못 올 길 떠난 자리에/ 방홧불에 데인 상처/ 아물지 못해 옹이로 슴배인/ 마을의 허한 터에 서서/ 끝내 살아갑니다'(강덕환의 '불 칸 낭' 일부)

 한결같이 학살터 등을 누비며 시는 물론이고 마당극, 유적지 기행으로 비극의 역사를 저마다 풀어냈던 이들은 지금 제주도의회 정책자문위원(강덕환), 4·3사건지원사업소 전문위원(김경훈), 4·3연구소 이사(오승국)로 일한다. 제주 사람들이 온 힘을 합쳐 1999년 제주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 제정이라는 큰 성과를 거둬냈지만 아직도 가야 할 길이 남았다. 이들이 때로 4·3의 현안 해결법을 놓고 목청을 높여가며 싸우는 이유다. 금기의 역사에서 공식의 역사로 이행하는 동안 하나하나 따져물으며 4·3을 컴컴한 동굴속에서 꺼낸 것처럼, 59주년을 맞는 이 시기도 4·3의 역사를 바로 세우기 위한 치열한 논의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20대에 만나 어느덧 40대가 되어버렸다. 젊은 시절의 열정이 올바른 4·3의 역사를 만드는 데 일조했다는 기쁨이 있다. 지금은 좀 더 책임감 있게 일을 해나가고 싶다."

 3인 공동시집을 묶어낼 꿈이 있다는 세 시인. 저 난폭한 시간앞에 때가 묻고, 변하지 않는 게 있을까만 '겸손해지자'는 이들의 다짐은 예외를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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